황정은, <일기>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일기, 황정은
‘우리 모두가 잠재적 화석’이라는 문장에서 턱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내 기억을 한다는 행위가 부담스러웠다. 내게 기억은 감정의 물성을 가진 생명체 같았고, 감당하기엔 부피가 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지만, 간직하고 싶은 찰나는 무조건 기체처럼 증발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끌어 모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이를 먹고 망각이 손쉬운 방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글을 쓰는 시간이 줄었다.
어릴 때 내가 했던 기록은 보물상자에 빛나는 돌멩이들을 주워 모으는 것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기록은 내 안에 어떤 것을 털어 내는 행위여서 때론 배설에 가까운 날이었다. 기록은
배설과 다르다. 그것을 자각하고 나니 쓰는 일이 어려웠다.
최근에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꽉 메운 서랍 속 물건들과 켜켜이 쌓여 있는 오래
된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손길 닿는 곳마다 놀라운 것은, 숨은 면면들이 나의 필체가 난무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이 집 자체가 마치 커다란 외장하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쌓아 놓기만 할 뿐,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파일들이 가득한 그것 말이다.
들쳐보면 나도 모르는 지난날의 내가 있고, 그 시간 속에는 다른 생각과 결을 가진 또 다른 자
아가 존재한다. 기록은 기록일 뿐이어서 그것에 인격체를 부여한다는 것은 난센스 같다. 매일 상
상한다. 수십 년 전의 기록들을 정리하는 장면을. 태워버리기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것 같고,
찢어 버리 자니 엄청난 양의 기록들을 언제 다 찢나 싶어서 아찔해진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고
나니, 돌연 의문이 든다. 어차피 다 폐기할 거라면 나는 대체 왜 기록을 한 걸까?
다시 작가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잠재적 화석’이 된다는 것에서 문장과 기록의 쓸모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화석은 지난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과정의 역사적 기록물이기도 하다.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모호한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한 자산이 된다. 기록의 쓸모는 거기에 있다.
개인의 기록에도 다양한 측면의 효용이 있지만, 가장 유의미하게 찾아볼 수 있는 효능은 스스로의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인간이 남기는 이름은 개인적 기록의 역사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역사는 인간의 생애를 기록하는 일의 퇴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흔이 되는 기념으로 사적인 기록들은 가감 없이 처분을 해볼까 한다. 되도록이면 정기적으로 내가 쏟아낸 기록들을 검열해 보는 거다. 그것이 사유의 흔적이 아니라 감정과 통념의 배설에 가까운 낙서라면 미련을 갖지 않고 떠나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