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zich Sep 11. 2018

[초승달의 집, 그 후] 번.쩍.번.쩍. 하게 보여요.

초승달의 집(A Moon on the Stage)ㅣ김재영, 태휘원 감독

 2017년, 회사에서 진행한'체인지메이커 기획영상' 프로젝트를 인연으로 만나게 된 김재영, 태휘원 감독님의 초대로 제 19회 장애인영화제에 다녀왔다. 총 열두 편의 장애인영화제 경선 진출작 중 한 편인 <초승달의 집>을 두 감독님이 연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보면 영화를 참 좋아하고, 가장 친한 또 다른 친구가 다큐멘터리를 전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에 흥미를 가져본 적은 많지 않았다. 사실 장애인영화제여서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여서라기보다, 두 감독님을 알고 또 두 분이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 온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에 꼭 보러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보다도 더 다큐멘터리가 생소하고, 수 많은 영화제 중에서 장애인영화제는 더욱 생경한 아내와 함께 <초승달의 집>을 만나고 왔다.


제 19회 장애인영화제 포스터 및 소책자(左) / 경선 진출작 <초승달의 집> 스틸 컷의 주인공 남호섭 배우(右)


 평상시 영화관에 갔을 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재생되는 영상에 처음엔 조금 적응이 어려웠다. 비장애인이 다수자인 평소의 경험과는 달리, 이 상영관에서는 음성 화면해설을 제공했고 대사가 없는 장면 장면마다 빼놓지 않고 모든 장면을 음성으로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장면마다 들려오는 해설을 애써 듣지 않으려 처음 몇 분간을 감상하다 보니, 같은 환경에서도 감각을 대하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태도가 사뭇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감각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이 감각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상은 음성으로 제공하는 화면해설과 함께, 한 남자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스폿라이트가 켜진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의자가 어디에 있는지 손으로 더듬어 확인한 후 차분하게 앉는, 꽤나 긴장된 남자의 표정이 어렴풋이 보이고 난 후 그의 이야기는 조금 더 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영화를 소개하는 소책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병명은 망막 포도막염이라고 했다. 한 쪽 눈의 시력이 먼저 소멸되었고, 같은 증상으로 점차 눈이 보이지 않다가 빨대 구멍으로 세상을 보듯 그렇게 앞이 보인다고 했다. 언젠가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끝이 작게 뚫린 삼각뿔을 쓰고서 술래잡기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러웠던 기억이 나면서 다시 한 번 그렇게, 감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다지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남자는 화면 안에서, 극단 단원들에게 연기를 지도했다. 도무지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은빛 지포라이터를 연습실 마룻바닥에 턱 하고 던지고는 이게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다. 단원들은 음절마다 힘을 주어 '번.쩍.번.쩍. 빛난다'고 했다. 다시 한 번 물었고, 단원들은 재차 '번.쩍.번.쩍. 빛난다'고 했다. 이윽고 네모난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남자는 은색 지포라이터를 가져갔다. 그리고 라이터가 놓여 있던 그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에 라이터가 보이느냐고, 어떻게 보이느냐고 물었다. 단원들은 다시 대답했다. '번.쩍.번.쩍.' 하게 보인다고. 남자는 각자가 표현하려 하는 이미지가 이처럼 선명하고 또렷하지 않으면 '나'의 연기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더더욱 그 표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미지. 이미지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이기도 하고, 상상을 통해 구성되는 사물이나 행위, 때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과 향기가 되기도 한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이미지(心像, 影像)는 '마음 속에 언어로 그린 그림(mental picture, word picture)'으로 정의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미지는 육체적 지각작용에 의해서 이룩된 감각적 형상이 마음 속에 재생되는 것이므로 감각경험의 복사 또는 모사(模寫)이기도 하다. 물론 이 때 복사와 모사의 방법은 선이나 색채가 아닌 '언어'이다. 그러나 복사나 모사라 하더라도 그 감각체험을 그대로 서술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각적 또는 지적 표상으로 간접화시키는 것이다.


 모공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혹은 뚝 떨어져서 관찰하듯 남자를 담아내는 카메라와 그 장면의 집합이 이 남자에 대한 이미지를 구성하고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것은 그가 단원들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선명히 해야 한다는 과정과 너무나도 닮게 느껴졌다. 마음 속에 언어로 무언가를 그려낸다는 것은 곧 마음 속에 시각(視角)을 활용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또한 물리적인 환경에서 눈으로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체험들은 곧 이미지화를 위한 좋은 재료가 될 테다.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마음 속 언어의 재료라면, 이미지화는 곧 내가 경험한 과거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남자가 남은 한 쪽 눈의 시력을 상실해가는 것에 대해 끝 없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마음 속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좋은 재료 중 일부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상실감 때문일 것이라는 상상을 감히 하게 되었다. 속초에서 극단을 이끌며 서울로 떠난 후배들이 힘들 때 든든히 버틸 수 있는 마음 속 버팀목을 자처하던 그가 놓게될 지 모를 책임감의 무게 역시도.


 <초승달의 집>에서는 연극, 극단, 속초, 가족이 반복되며 이 남자가 이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아주 친절하게, 하지만 겸손하게 그려진다. 드라마틱한 전환이나 연출 없이,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농밀하게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스토리의 소재가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을 또렷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경험이 된다.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에는 모두 배경과 이유가 있고, 이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작품은 평가보다는 공감을 전한다.


배우 남호섭. 극단 소울시어터 대표이며 전국연극제 연기상, 강원연극제 최우수연기상, 미쟝센영화제 연기부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제 35회 강원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작품이 침착한 호흡으로 건네준 이 경험들은, 초반 화면에 등장한 남자의 무대 입장이 곧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무명(無明)배우 남호섭>의 시작이었음을 보여주는 화면에서 관객들이 장면을 마음 속 언어로 이미지화하게되는 계기가 된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진 무대 중앙 의자에 뚜벅뚜벅 들어간 그가, 조명감독에게 암전(暗轉)을 요청한 그 순간부터 관객은 호섭의 언어와 숨소리, 그리고 80여분동안 화면을 통해 느꼈던 남호섭에 대한 모든 기억을 통해 이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완성하게 된다. 이 때만큼은 정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같은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러닝타임이 모두 지난 후 시작된 GV에 두 감독님과 남호섭 배우가 스크린 앞에 섰다. 으레 하는 질문과 대답들이 오가는 중 한 관객의 질문과 그에 대한 호섭 씨의 답이 아직도 선연하다. 시각장애인으로, 연극배우로 살아가는 데 있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호섭 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질문 중에 극복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저는 제 몸의 일부로 저와 함께 지내는 제 눈을 극복하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게 되면서 깨달은 게 있거든요. 생각보다 그 동안 쓸데 없는 것들을 참 많이 보고 살았다는 것이라든지, 다른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 등이요."


 얼마 전, 회사에서 2주에 한 번씩 보내는 뉴스레터 제목을 두고 팀원들과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간 적이 있었다. 그 역시도 극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후 사나흘 정도 저토록 흔하게 쓰이는 단어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장애인영화제에서 만난 <초승달의 집>을 통해, 장애를 비롯하여 사람이 처한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이미지는 '극복'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만 나의 상황을 번.쩍.번.쩍.한 마음의 눈으로 선명하고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함께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초승달의 집>에 감사함을 전하며, 훗날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참, <초승달의 집>을 연출한 김재영 감독은 그믐달은 어두워지는 달이지만 초승달은 보름달이 되는 달이기에 그와 같은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 fin.

 

매거진의 이전글 <소매치기>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