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미스터 폭스(Fantastic Mr. Fox)
작품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Fantastic Mr. Fox, 2009)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목소리) :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제이슨 슈워츠맨 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가장 최근 영화다. 가장 최근에 본 웨스 앤더슨의 영화이기도 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니, 이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라는 제목의 영화는 독특하게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유일한 애니메이션이다. 왜 뜬금없이 갑자기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걸까? 하는 궁금증을 잠시 미뤄두어도 되었던 것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연출을 통해 받은 나의 감상이 굉장히 동화적이고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이 ‘동화적이고 따뜻한 심상’을 애니메이션만의 것이라고 한정짓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으나- 보통 그렇게들 생각하니까.
이 영화는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작법은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형식이다. 마치 2차원 롤 플레잉 게임을 하듯 배경을 화려하게 뒤흔들지 않고 인물에 집중한다. ‘마음대로 색과 배경을 설정할 수 있었을’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시종일관 편하고 거리낌없는 화면을 선사한다. 나에게 이 영화는 ‘정체성’이라는 알맹이가 겪는 사건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다룬 작품으로 정리되었다. 폭스 일가와 동물 친구들이 나누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자면 그런 것인데, 영화 자체가 주는 따뜻한 심상을 그저 마음 편히 받아들여도 물론 굉장히 좋다.
미스터 폭스는 전형적인 아버지다. 감독이 미국인이고 여기가 한국임을 감안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일반적인 아버지다. 대외적으로 부리고 싶은 일말의 자존심과, 아내에게 그 자존심을 들키지 않으려는 모습, 자식을 엄격히 대하는 일련의 모습들까지도. 하지만 초반부터 폭스가 꽤나 매력적인 건, 로맨틱한 푼수같은 그의 이미지와 그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의 ‘고급지게 끼부리는’ 목소리가 굉장히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함께 닭을 훔쳐먹고 살아오다,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는 ‘이제 도둑질에서 손을 떼자’고 마음먹은 폭스 부부의 생활은 ‘미스터 폭스’가 이른바 ‘실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위기에 빠지기 시작한다.(폭스 씨가 친구인 카일리에게 ‘왜 난 여우여야 해? 난 지금 실존주의적인 질문을 하는거야’라고 물으면서-) 어쨌거나, 폭스 씨가 여우여야 하는 이유는 ‘나는 여우니까!’ 로 기울게 되고, 조카까지 동원해 가면서 실존에 걸맞는 도둑질을 하게 된다.
도둑질의 대상은 인간, 그 중에서도 가장 돈 많은 지주들인 보기스와 반스, 그리고 빈이다. 닭 몇 마리, 사과주 몇 병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폭스 일가와 동물친구들의 주거권은 순식간에 파괴된다(‘도둑질했으니까 벌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너무 속이 좁거나 메타포 해석능력장애를 의심해 보라). 재미있는 건, 또한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급박한 위기상황이 전혀 심각하지 않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뭇 애니메이션에서도 비슷하게 가져가는 1인칭 시점의 급박함보다는, 관찰자의 시점을 놓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땅을 파고 도망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도 그저 단면도를 통해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보여줄 뿐이다. 감독은 마치 ‘뼈대만 놓치지 않으면 그만. 나머진 내 스타일이야!’하며 줏대있게 말하는 듯 하다.
다시 돌아와서, 폭스 씨의 고민을 쉽게 풀자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동물 친구들의 직업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의 직업과 다르지 않다. 폭스 씨 때문에 살 집을 모두 파괴당했을 때, 동물들은 폭스 씨에게 분노하지만 이내 각자가 가진 능력과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곧 ‘행복한 일’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당신들의 모습을 보세요. 우린, 할 수 있어 친구! 네가 잘 하는 걸 하는거야!’ 와 같은 오글거리는 수사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상황 속에서 드러날 뿐이다.
사촌 크리스토퍼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폭스 씨의 아들 애쉬도, ‘아빠처럼, 크리스토퍼처럼 되려고 애쓰던 모습’을 벗어던지면서 그 작은 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모든 동물들은, 인간의 가치기준이 아닌 ‘동물로서의 가치기준’을 다시 찾고서는 더 편안해진다. 그게 바로 ‘가장 자연스러운 생존’을 위한 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미스터 폭스’는 인간에 대한 투쟁에서 잘린 꼬리를 되찾고는 대수롭지 않게 붙이고 다닌다. 그리고는, 이제 마음대로 떼었다 붙일 수 있어 좋다고 너스레를 떤다. 꼬리 하나쯤 상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은 게 훨씬 중요하고 당연한 거니까. 폭스 가족을 비롯한 동물들이 정말 ‘판타스틱’한 것은, 평생을 가도 못 깨달을지 모를 삶의 가치를 ‘에라이~! 그래 이거야!’ 하고 호탕하게 받아들여서다.
‘나와 네가 각자의 삶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때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힘들고 아플지라도, 친구들이 함께할 것이며 그게 옳은 것임이 증명될 거라고 깜찍하게 보여주고 있다. 80분 남짓한 시간동안 귀엽기 그지없는 동물들이 이 멋진 깨달음을 대수롭지 않게 선사한다. 틀린 게 아니라 넌 다른 거야. 네가 가진 것들로 넌 충분히 멋져질 수 있다고 기를 살려주는 듯 하다.
여우인데도 반할 것만 같던 ‘미세스 폭스’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애쉬, 나는 네 기분 다 이해해. 다르다는 거 말이야. 그래도 다르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