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실히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도 아이에게 따뜻하고 친절할 수 있구나'
'나도 아이랑 노는 게 즐겁구나'
나는 이전에 늘 고민하고 자책했다.
나는 왜 내 아이에게 따뜻하고 친절하지 못할까,
왜 아이랑 놀아주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
퇴근 후 밥 먹고 집을 대략 정리하고 나면
겨우겨우 의무감에 30분 정도 놀아주었는데
그 시간은 솔직히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가득찼던 시간이었다.
의무감과 책임감의 30분이 지나면 자연히 아이가 잘 시간이 되었고
이내 내 몸은 자동으로 침대로 향했다.
눕고 싶고 쉬고 싶었다.
자기 싫어 자꾸만 장난을 거는 아이에게 빨리 자라고 윽박을 지르고
잠든 아이를 보고 나면 오늘도 아이랑 긍정적으로 교감하지 못한 것 같아 후회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아이를 좀 더 품어주지 못할까.
그렇게 늘 나를 자책하며 또 하루를 마감했다.
근데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오히려 칭찬을 해주고 싶다.
회사에서 그렇게 시달리고 기빨리고 와서도 아이랑 30분이나 놀아주다니!
전업이 된 지금은 예전처럼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거나 화를 내지도 않고,
자기 싫어 장난을 거는 아이에게 웃으면서 같이 장난을 친다.
아이와 함께하는 레고놀이나 색칠놀이가 그저 있는 그대로 즐겁다.
무슨 차이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내 마음에 에너지가 있다는 것.
저녁 8시쯤, 내 에너지 수준과 컨디션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
'내가 못났던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에 쓸 에너지를 회사에서 다 쓰고 왔던 거구나'
'간당간당한 배터리로 그래도 아이랑 놀아주느냐 정말 애썼구나'
'그때 나 진짜 힘들었네.'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나갔던 시간.
내가 괜찮은지, 힘든지, 내 배터리가 어느 정도 남았는지 살필 겨를도 없던 시간.
그저 눈 앞의 일, 퇴근하면 눈 앞의 아이에게 늘 최선을 다했던 시간.
그 시간들은 내가 부족했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잘 견뎌내고 해낸 시간이었다.
오늘도 어쩌면 자책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을 워킹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은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책이 아니라 칭찬이 필요하다고 .
정말 고생했다고. 오늘 하루도 정말 애썼다고.
비롯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늘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은 내 아이가 기억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