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남 Jan 24. 2022

결국 다 내 잘못인 것 같아요  

내 잘못이 무언인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기 

"결국 모든 게 다 내 문제에요. 내가 더 잘하면 되는데" 


아이와의 관계를 고민하던 한 엄마 내담자의 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고, 결국 모든 것은 부모 탓이라는 식의 육아 코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와 아이도 기질/성격의 궁합이 있고 또 기질적으로 유달리 까다로와 부모를 늘 고군분투/기진맥진하게 하는 아이(바로 내 아이가 그렇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고 아이는 그저 해맑은 '아이'이기에 

그리고 아이의 그러한 반응들을 조율하고 안내하고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부모이기에

많은 솔루션들이 결국 부모의 변화를 요구하는 쪽으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부모도 힘들다. 부모도 사람이다. 부모도 인내심의 한계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육아 코칭을 할 때 개인적으로 중시하는 것은 부모의 변화 이전에 부모의 '자기돌봄'이다. 엄마 아빠의 마음밭이 풍요로와야 아이도 품어주고 수용할 수 있다. 내 마음밭이 가시밭길이거나 바싹 메말라있으면 아이의 그 어떤 반응도 그대로 품어주기가 어렵다. 


부모 스스로 마음 밭이 윤택해 지고 나면 부모도 자기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내 문제는 아니지만 '어떤 부분은' 나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사실  그냥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뭉뚱그려 버리면 편한 부분도 있다. 어디까지가 나의 잘못이고 어디까지가 이 아이의 특성이며 어디까지가 우리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세세히,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퉁치면 그래서 그 세밀한 과정을 보지 않으면 더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서는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아이와 부딪히게 되는 많은 부분은 나의 특성도, 아이의 특성도 아닌 하필 이 아이와 나의 상호작용이 맞물려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다른 아이를 대할 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을 나의 어떤 부분이, 바로 이 아이의 또 다른 어떤 특성과 맞물려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이가 늘 양보만 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않아 고민인 엄마가 있었다. 

근데 그 엄마가 딱 그랬다. 늘 묵묵히 참는데 익숙했고 타인의 제안은 늘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엄마는 늘 똑부러지게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과 싸우고 갈등하는 것이 너무도 무섭고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하필이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면 그 순간, 엄마는 무언가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런 고민이 없는 엄마면 '우리 아이가 참 많이컸네. 양보도 잘하네'하고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넘겼을 장면에서, 이 엄마는 뭔가 매우매우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기 주장을 가르치고 싶지만 이건 또 쉽지 않다. 엄마도 안해봤기 때문에... 아무리 육아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를 봐도,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말이 아니기에 아이에게 잘 닿지 않는다. 


아이의 그 행동이 그토록 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뭘까?

사실 그것은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인 것이 아닐까? 

혹은 내가 그것으로 인해 괴롭거나 고통스러웠기에, 아이도 똑같이 그걸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와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계속 같은 지점에서 걸려 넘어진다면, 그것이 어떤 지점인지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모든 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내가 걸려넘어지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고, 그 걸려넘어진 내 마음부터 살펴보자.


부모의 마음밭을 돌보는 일이 결국 아이의 마음 밭을 가꾸는 일의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