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재택근무
아이를 뒤로 하고 일을 해야 한다면...
올해 초,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으로 별다른 준비도 없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늘 대면 상담에 익숙했기에 처음 해보는 화상 상담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사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5살 난 딸아이와 '함께'하는 재택근무 그 자체였다.
평소에 아이에게 엄마는
낮시간에는 회사에 있어서 함께 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퇴근 후, 주말에는 자신을 바라봐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이었다.
특히 아이에게 '집'이란 엄마가 퇴근 후 돌아와 자신을 따스히 돌봐주는 공간으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나누는 공간으로,
엄마가 자신을 바라봐주는 따스한 눈길로,
그러한 촉감과 냄새로 기억될 터였다.
그러나 엄마의 재택근무와 아이 유치원의 개학 연기는
아이에게 엄마의 따스한 눈길이 아닌 등을 바라봐야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9시-6시 근무를 해야 하는 나는, 아이를 등지고 모니터 앞에 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모니터만 쳐다보고, 아이는 모니터만 보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등 뒤에 와있는 아이에게, '엄마 지금 일해야 하니까 가서 할머니랑 놀아'라고 단조롭게 얘기하였다.
처음 며칠 떼를 쓰던 아이도 엄마의 재택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조용히 내게 짧게 짧게 다녀가기 시작했다. 레고 만든 것을 자랑하고, 그림 그린 것을 선물이라고 가져오고, 자기가 먹던 과자를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잠시라도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고맙다' '멋지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내 나는 쏟아지는 일들 속에서 나를 찾아온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못한 채 시선을 계속 모니터에 고정하며 형식적으로만 고맙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밀려드는 회의와 상담으로 진짜 너무 바빠서 화장실도 못 가겠던 어느 날,
그날따라 유달리 자꾸 찾아오는 아이에게 눈길 한번 줄 수 없던 날. 아니 사실은 일말의 짜증도 샘솟았던 날,
바로 그날 할 일들을 어느 정도 대략 마무리하고 숨을 고르던 내 머릿속에 칼처럼 지난 간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가 회사에 안 간다! 나도 유치원에 안 간다!
아이에게 이 상황은 마치 주말 혹은 퇴근 후 저녁시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멀쩡히 나랑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이번엔 나랑 놀아주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고 '회의'를 해야 한다며 할머니랑 놀라고 나에게 등을 돌린다.
나는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니!
아이가 가졌을 이 느낌에 갑자기 너무 죄스럽고 마음이 아팠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하루에도 10번 넘게 나를 찾아올 때, 나는 정작 아이를 한 번도 '먼저' 찾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고작 일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일방적인 관계 맺기를 하고 있었구나. 그것도 세상 가장 소중한 내 아이에게.
고이는 눈물을 삼키고, 모르겠다 노트북을 접어두고
잽싸게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눈이 동그레 진다.
"왜 엄마?"
"네가 보고 싶어서 잠깐 와봤어"
아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엄마도 나를 찾고 있구나. 나만 엄마를 애타게 찾는 것은 아니었구나.
그것은 온 우주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과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재택근무를 할 때마다 일부러 하루에 1~2번 아이를 '먼저' 찾아간다.
여전히 부족할 테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이에게 온 우주 가득히 느껴지는 따스함을 선물하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