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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남 Oct 14. 2020

아이에게 스며든 나의 색깔   

나를 잘 알아야 좋은 부모가 된다.

유치원에서 딸아이의 생일파티를 한 날.

보통 유치원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그 달 생일인 친구들이 함께 생일 파티를 한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사진을 보면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같은 반 친구들끼리 선물도 전달하고, 후후 촛불도 불고 뭐 그런 즐거운 행사였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특히 그달 생일인 친구들은 하나하나 공들여 단독샷을 찍어주셨다. 해맑은 웃음을 지닌 아이들이 생일 케이크 앞에서 저마다 브이를 하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아래에는 '나는 나는 되겠어요 000이 되겠어요'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생일 주인공들이 장래희망 발표를 한 모양이다.


'나는 나는 되겠어요 과학자가 되겠어요'

'나는 나는 되겠어요 의사가 되겠어요'


그리고 나를 3초간 멈칫 하게 한 우리 아이의 장래희망 ....

'나는 나는 되겠어요 공주가 되겠어요'


아,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나보다. 순식간에 마음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지나가서 혼란스러웠다. 과학자와 의사 사이에서 '공주'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해석의 틀이랄까 방법 자체를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아이를 재우고 내 안을 다시 천천히 들여보았다. 내가 경험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혹감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또 기뻤던 것은 아니었다. 안도감이었을까. 뭐였을까. 순간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1) 워킹맘의 고질적 죄책감_내가 부족해서 그래.

다들 그럴 듯한 직업을 얘기하는데 '공주'라니. 나도 좀 더 아이에게 직업에 대해 설명하고 얘기해주었어야 했나. 이 나이쯤에 다들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그러나? 내 아이만 뒤쳐지고 있나? 내가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줘서 그런가봐.


2) 합리화_내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고 있어 

뭐 의사? 과학자? 그게 그 아이의 꿈이라고? 분명히 엄마가 주입시켰겠지. 의사나 판사라고. 과학자되라고.  5살 꼬맹이가 '의사'가 가진 그 두음절이 함축하는 바를 뭘 알겠어. 그건 엄마의 꿈이지 그 아이의 꿈은 아니잖아. 아이면 아이답게 그 나이면 공주를 꿈꾸는게 맞지.


3) 민망함 _ 사실 나도 다를게 없어

의사라는 꿈이 그 아이의 꿈이 아닌 그 아이 엄마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철저히 워킹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합리화로 생각이 도달하고 나니, 다시 나를 살피게 된다. 사실 '공주'라는 꿈도 내 아이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이 아닐까. 그래... 그런거 같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의사가 그 엄마의 꿈일지도 모르듯, 사실 공주는 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램이자 나의 결핍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늘 삶에 치여 지쳐있던 엄마와 아빠. 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부모님의 돈 걱정을 곁에서 보고 들어야만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장난감 사달라는 투정 한번 부려보지 못한 채,  많은 것을 스스로 해내고자 했던 것 같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안그래도 힘든 엄마 아빠에게 나까지 걱정거리, 짐이 될 수 없었으니까.


넉넉하고 든든한 부모와 풍요로운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며 해맑에 자라나는 공주같은 아이. 나는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랬나보다. 그래서 내 아이는 '공주'가 되겠다고 했고, 사실 그것은 바로 내 희망사항이자 내 결핍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훌륭한 부모인지 자주 고민한다. 하지만 그 전에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 질문도 연결해서 살펴야 한다.


"당신의 부모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당신이 되고자 하는 부모로서의 모습은, 사실 당신이 가장 갖고 싶었던 부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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