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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zero Mar 27. 2024

첫 여행은 너무 어려워

  

     후쿠오카로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집 정리와 각종 행정 처리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다가 간간히 아이와 책을 읽는 생활. SNS 속 화려한 사진처럼 유명 맛집이나 관광지는 못 가더라도 우리 동네만이라도 벗어나 보자 싶었다. 아직 아이 학교도 대기 상태이니 굳이 주말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마음먹은 김에 바로 떠나기로 했다. 일본 와서 피로와 피곤을 백팩처럼 메고 있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온천이 떠올랐고, 그렇게 장소는 “유후인”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로 가는 특급열차, 유후인노모리(관광열차), 버스는 이미 만석이었다. 좋다고 소문난 료칸도 예약이 차 있었다. 부랴부랴 아고다에서 하나 남았다고 빨간 표시가 뜨는 료칸을 잡고, 기차는 신칸센으로 예약했다. 특급열차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유후인으로 가니까, 우리 가족은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이 아니니까. 느긋하고 여유 있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고 여겼다. 평화롭고 한적한 기차여행을 상상하며 오동통한 장어가 올라 간 에끼벤또와 초콜릿과 버터로 꽉 찬 쿠키를 샀다. 신칸센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계획한 대로 유후인에 가지 못했다. JR 공식사이트에서 구매한 기차표는 직행이 아니라 두 번이나 환승을 해야 하는 표였다.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정하고 구매한 표였기에 나와 남편은 당연히 직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러니까 서울-부산을 오가는 기차가 ktx만 있는 게 아니라 무궁화랑 새마을호도 있는 것처럼, 느리지만 한 번에 우리가 유후인에 도착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내 방송은 생소한 지명을 말하고, 당황해서 킨 구글맵은 우리가 남쪽으로 가고 있음을 알려줬다.(낙하선처럼 아래로 움직이던 그 빨간 점이 어찌나 무섭던지!) 그렇다, 우리는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종점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유후인이 아니라 구마모토 종점에 도착했다. 하하하!


    종점이라니! 당황한 나는 뒷자리 승객에게 표를 보여주며 “Is this s finish station?”이라 물었다. 단발머리의 승객은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はい”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부모와 함께 있지만 미아가 된 아이처럼,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진 조난객처럼. 아이를 안아주며 괜찮다고 했지만 울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옆에 서 있는 남편도 당황해 하기는 매 한 가지.


  하지만 누가 누굴 탓할 거냐, 표를 예매한 것도 환승 지점을 놓친 것도 모두 나와 남편이 한 일인 것을. 그렇게 우리는 승객들을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톨게이트 한가운데 서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울고 싶었던 마음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고, 웃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일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낯선 나라에서 산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일까.  고작 이 정도 일에 울거나 화를 내면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종점까지 와 버린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여겨졌다. 내가 소리 내어 웃자 남편도 그때서야 함께 웃었다.    



    

   우리는 역사 안의 안내센터로 가서 지금의 상황을 파파고와 손짓발짓, 영어로 설명했다. 친절한 안내원은 구마모토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방법을 프린트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그래, 어떻게든 방법은 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온천 하러 갈 수 있다. 나는 안내원이 준 프린트를 여권처럼 소중히 안고 플랫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구마모토- 구르메(환승)- 히타(환승) -유후인에 무사히 도착했다. 오전 9시, 후쿠오카시에서 출발해서 오후 4시에 유후인에 도착한 길고 머나먼 과정이었다. 아, 큰맘 먹고 산 장어가 올라 간 에끼벤또는 기차 안에서 먹을 수가 없어서 환승역에서 5분 만에 허겁지겁 먹어 치워야 했다.

 

    그렇게 이 여행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당탕탕 여행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유후인 상점 대부분이 5시에 문을 닫아서 후다닥 뛰어가서 기념품 몇 개만 산, 웃픈 사연은 간단히 기록해 본다. 역시나 돌아오는 기차, 버스가 매진이어서 계획에 없던 1일 투어버스를 탄 이야기도.

    그래서 앞으로 여행은 안 갈 거냐고? 그럴 리가. 유후인 온천이  좋아서 다음에 또 가고 싶다. 그때는 미리미리 준비해서 특급열차를 타고, 유명한 료칸도 예약해서 말이다. 물론 에끼벤또는 꼭 신칸센 안에서 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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