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zero Apr 08. 2024

어느 날 문득

    ‘일본’에서 살게 되었다.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나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저기 가서 살아보고 싶네, 우와! 저 나라 사람들은 좋겠네.’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해외살이를 할 거라는 계획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는 삼십 대도 아니며,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이 필요한 이십 대도 아닌, 나는 매일매일 해 내야 하는 퀘스트가 쌓여있는 사십 대 기혼유자녀 여성이니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이틀 정도 홀로 국내여행을 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아직 이뤄본 적 없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어느 날, 문득 타국으로 오게 됐다.      



    물론 자의에 의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 늦봄, 퇴근한 남편은 2024년이 안식년이며 일본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회의를 통해 다 결정된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 혼자 가겠다는 건지, 같이 가자는 건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위드 코로나’를 부르짖는 시기였다. 방역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으로 가겠다니. 내 표정을 본 남편이 다시 말했었다. “가족 모두 함께 가자.” 물론 힘들면 아이와 함께 한국에 남아도 된다고 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된 아이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으로 데려가는 게 위험한 모험일 수 있다면서. 나는 며칠 고민해 보겠다고 남편에게 답했다.     



    그렇게 생각지 못한 질문지를 받고 며칠 고민에 빠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삼십 년 이상 머물고 있는 이 도시를. 국민학교 사 학년, 열한 살 때 이사 온 이후로 내 삶은 모조리 한 도시에 한정되어 있었다. 도시 저곳에서 도시 그곳으로, 다시 이곳으로, 작은 발자국을 남기면서 쳇바퀴 돌 듯 걸음 할 뿐이었다.

    고민을 가장한 내 질문에 지인들의 답은 다양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일 년만 떨어져 살라는 거였다. 일 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니 아이와 함께 남아도 힘들지 않을 거라 했다. 학교 방학 때, 혹은 학기 중에라도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남편에게 여행하듯 다녀오면 될 거라고 말이다. 혼자 외국에서 사는 것과 세 명이 사는 데 필요한 경비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라는 이유도 한몫했다. 전부 수긍이 가는 내용이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은 이런 기회가 어디 있냐며 무조건 떠나라고 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닌다고 하지만, 아직 교과과정이 어려운 고학년이 아니니 학습 부담이 없을 거라 했다. 가족은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한다면서, 자기도 한 번쯤은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들이었다.     



    알고 있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생각하면 가지 말아야 하고, 가야 할 이유를 생각하면 가야 했다. 함께 고민을 하고 의견을 나눠 준 지인들의 말은 전부 맞았다. 그리고 내 대답은 앞서 말했듯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답정너’였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열 가지이고, 떠나야 할 이유가 한 가지뿐이더라도 나는 가기로 결심했다. 가서 고생하고, 돈 쓰고, 우왕좌왕 엉망진창이 된다 해도 말이다. 익숙하고 편한 이 도시를 떠나 낯설고 불편한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외살이를 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지닌 채.



    

    그렇게 시작은 타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결심한 순간 그것은 자의가 되었다. 일본어 하나 모르면서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으로, 온 가족이 떠나기로.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내 몸과 마음, 눈과 귀는 이미 비행기 창가 석에 앉아 있었다. 해외살이를 위한 준비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되며, 수많은 서류를 요하는지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에서 보물찾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