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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zero Apr 08. 2024

그러다 문득


    그렇게 온 가족이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면서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오래전 여행으로 가 본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를 떠올리면서 나는 어디에서 살게 될까, 하고 점심 메뉴를 고르듯 살 곳을 점 처 보았다. 라멘 맛집이 있는 곳이 좋을까, 녹지가 좋은 공원 근처가 나을까, 그래도 교통과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 우선이겠지? 혼자 구글맵을 켜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전부 떠나기 전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자 환상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떠올랐다. 올가미에 발목이 낚인 것처럼 빠르게 뻗어가던 상상들에 급제동이 걸렸다.



    베스트셀러 작가나 전국방방 곳곳을 다니는 유명 강연가는 아니지만, 나는 글을 쓰고 책을 펴내며 강의를 하는 사람이었다. 내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박힌 소설집이 두 권, 에세이집이 한 권 있는 작가였다.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는 지금 이 순간이 민망하고 부끄럽지만(오프라인에서 내가 소설가라는 것을 커밍아웃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내 정체성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그것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떠오른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일 년 동안 한국이 아닌 곳에 머문다면 그동안 해 오던 일들이 다 중단되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 조바심 말이다.      

     


    물론 어느 작가들은 창작의 영감과 소재를 찾아 일부러 여행을 떠난다. 일상과 다른 장소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던져서 이전과 다른 감각과 정신으로 세계를 대면한다. 그런 경험이 새로운 글의 밑천이 되어 더 나은 글을 쓰는 동기와 원천이 된다. 삶과 여행, 글쓰기가 일치하는 그들- 헤밍웨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의 삶을 나는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그들이 쓴 여행기와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는 생각 역시 해 보았다. 작가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한 번쯤은 꿈꿔 볼 만한 인생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조금은 흉내 내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도대체 왜 망설이는 것일까? 내 발목을 잡아 끄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몇 권을 책을 냈다고 하지만, 내 생활을 굴러가게 하는 수입은 원고료와 인세가 아니라 글쓰기 수업과 강의였다. 한 때는 대학교의 교양 글쓰기 시간강사이자 국공립도서관의 에세이 쓰기 강사로, 중고등학교의 단기 특강 선생으로 나는 살고 있었다. 백일장 심사를 하고 심사평을 쓴 다음에 심사비와 원고료를 받았다.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끽할 수 있는, 인세가 통장에 다달이 입금되는 어느 작가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고, 소설을 쓰는 것을 정말 사랑하지만(아, 물론 고통과 자괴감이 동반함은 당연하다), 소설은 나의 생계를 책임져 주고 있지 않았다.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쓴 소설들 덕분에 글쓰기 강사이자 단기 특강 선생이 될 수 있었으니 소설이 나를 먹여 살려 준 것은 맞는 듯하다. 직접적인 원고료와 인세가 아니더라도, 소설로부터 파생한 일거리들이 나를 살찌워줬으니까.      

    일 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으면 그동안 해 오던 일들을 모두 중단해야 했다. 글쓰기는 세계 어디서든 할 수 있으나(나는 지금 이 글을 후쿠오카의 한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다), 글쓰기 강사는 모국어와 모어가 일치하는, 대한민국의 특정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휴직계를 내고 일정 기간 쉴 수 있는 직장인이 아닌데,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일 년이라는 공백은 결국 퇴출이 아닐까? 당장의 생활비는 그동안 저축해 놓은 것으로 어느 정도 충당한다 해도, 일 년 뒤에는 어떻게 될까? 그 뒤에도 나를 기억하고 써 주는 기관이 있을까? 방금 전까지 부풀어 올랐던 장밋빛 미래가 잿빛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열 가지이고, 떠나야 할 이유가 한 가지라도 그 한 가지를 붙잡고 가겠다고 했는데. 결정적인 이유 한 가지가 나타났다. 한쪽 발목만 잡으면 어떻게 줄을 끊고 도망치겠는데, 생활비와 생계의 영역은 두 다리를 모두 묶어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남편에게 가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이제껏 쌓아 올렸던 활동영역을 무시할 수 없어서였다. 내 일을 포기하고 가는 모험이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의 득실이 되는지, 냉정하게 따져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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