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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Nov 15. 2018

잠, 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친다

육아 중 수면부족의 위험성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다음에 열거된 증상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만성피로,  무기력,  비만,  폭력성 증가, 질병, 사망  


그 흔한 ‘만성피로’부터 듣기만 해도 섬뜩한 ‘사망’에 이르기까지, 증상의 범위가 매우 넓어 정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육아를 하며 흔하게 겪는 다음의 이야기와, 위에서 열거된 ‘증상’이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다면 어떨까요. 아마 제 경험담이 여러분에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질문의 답을 찾아볼게요.

육아를 하던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 하나는 ‘건망증’이었습니다. 손에 있는 핸드폰을 찾기 위해 전화를 부탁하고, 가방 안으로 훤히 보이는 분유를 안 가져왔다며 허둥지둥 대는 아내. 물건을 찾다 하루를 다 보내는 그녀는 분명 이상해 보였어요.

그러나 알고 보니 비단 우리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출산 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기억력 감퇴를 경험하죠. 바로 ‘마미 브레인’으로 알려진 증상입니다.


마미 브레인으로 일컬어지는 여성의 ‘기억력 감퇴’는 임신, 출산 그리고 수면부족이 원인입니다. 임신에서 오는 호르몬 변화는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의 ‘회백질’(육안으로 보았을 때 회색인 뇌의 부분이며 표면에 주로 분포함)과 학습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의 크기를 줄여, 기억력 감퇴를 유발하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이제부터 육아를 하려면 더 많은 기억력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의 뇌에서 ‘부정적 변화’가 일어날까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새로운 생명을 보살피기 위한 희생입니다.

이는 단순한 일부분의 축소가 아닌, 아이의 요구에 반응하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뇌를 재구성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아이를 더 잘 기르기 위해 기억력 감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마미 브레인에 관련된 ‘긍정적 변화’와는 다른 원인을 말이죠. 호르몬의 변화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지만, 다음의 내용은 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해결도 가능해 보입니다. 바로 ‘수면부족’이에요. 또한 이 문제는 외부에 그 원인이 있기에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육아하는 남성도 ‘기억력 감퇴’를 경험하게 돼요. 어쩌면 예정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밤 2~3시간마다 우유를 달라는 우는 아이 덕분에 수면의 질은 점점 나빠져 갔어요. 심지어 아이를 안고 졸다 떨어뜨릴 뻔한 경험을 할 때면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 커피를 마시지만 해소되지 않는 ‘멍한 느낌’은 하루 종일 저를 괴롭혔고 “정말, 잠 한번 푹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을, 기억하실 거예요.


그렇게 매일을 비몽사몽간에 지내다 보니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하나씩 기부하는가 하면, 장을 보러 가 지갑을 챙기지 않아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일이 늘어났어요. 마미 브레인과 같은 건망증이 생긴 거죠.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하며 고민만 했지, 수면부족이 원인일 줄 누가 알았나요. 이유도 모른 채 자꾸만 이상해지는 제 자신을 마주하다 보니,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어 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건 “수면부족으로 인해 육아를 포기하고 싶다.”라는 말은 사람들의 반발을 살 것 같습니다.


“100일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던데, 그때까지 잘 버티면 되는 것은 아닌가?” 혹은 “부모로서 그것도 못할까?”라는 반응을 예상할 수 있죠. 하지만 육아로 생긴 ‘수면 박탈’은 앞서 언급한 ‘단순 피로 혹은 기억력 감퇴’ 이상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3일 24시간의 수면 박탈은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와 동일한 상태를 유발합니다. ‘몸의 균형을 잃고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하며 ‘횡설수설함’을 수면부족으로 겪을 수 있다는 뜻이며, 이로 인해 부모와 아이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게 되죠. 지금 바로 스마트폰으로 수면부족과 음주에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이런 의문의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부모가 같이 자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이가 잠든 시간에 해야 할 일 산더미같이 쌓인 집안일을 제처 둔다면, 낮잠은 분명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면 박탈 후 회복’에 관한 실험 결과도 있죠.


해당 실험은 피 실험자에게 하룻밤 혹은 이틀 밤의 수면을 강제로 박탈한 뒤 누적된 피로 해소를 위한 수면시간을 측정하였습니다. 도출된 결과로 하룻밤의 수면 박탈은 단 2시간의 깊은 잠으로 보충되며, 이틀 밤의 수면부족은 5시간의 숙면으로 회복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것만 놓고 본다면 육아에서 오는 수면부족은 극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단순히 ‘피로의 회복’ 측면에서만 보아야 하며, 장기적으로 육아를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될 수 없는 방법입니다. 누적된 수면부족은 우리의 뇌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초래하기 때문이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행해진 실험에서, 수면을 박탈당한 피 실험자가 이후 4일 동안의 충분한 휴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뇌의 일부 기능은 실험 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험자들은 회복될 수 없는 뇌의 손상을 입은 것이죠. 몸은 개운해졌지만, 뇌의 손상은 휴식으로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다른 글에 비해 조금 지루해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에 근거한 글이다 보니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지고 말았네요.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수면부족은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느꼈을 겁니다.

또한 위에서 열거한 6가지의 증상 역시 수면부족과 연관된다는 것도 이미 짐작하셨겠죠. 기억하세요. 제대로 된 육아를 위해선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며, 수면 박탈 해소를 위한 배우자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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