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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Mar 01. 2021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현실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의 예상을 깨고 당선되었다. 트럼프의 당선 이유로 러스트 벨트(미국 제조업의 호황을 구가했던 중심지였으나 제조업의 사양화 등으로 불황을 맞은 지역) 지역의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꼽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중국과 같은 신흥국에서 가져간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대중 무역 전쟁이 분노로 이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세계화를 지향하던 미국이 이제는 보호무역을 말하는 사실이 태평양을 끼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삶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힐빌리의 노래> 저자인 J.D 밴스는 러스트 벨트 오하이오의 철강도시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지금은 변호사로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난한 도시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힐빌리의 노래>에 어렸을 때 불안했던 자신의 삶을 녹였다.

 나는 자포자기 직전까지 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어쩌다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신적, 물질적 빈곤이 자녀에게 어떤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길 바랐다. 우리 가족과 내가 마주했던 아메리칸드림을 이해하길 바랐고, 신분 상승을 이루면 정말로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야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운 좋게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더라도 과거에 우리를 괴롭혔던 악령은 여전히 우리의 뒤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저자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적, 물질적 빈곤은 희망이 없는 현실을 말한다. 계획 없는 소비는 개인파산에 이른다. 장기적인 목표가 없는 그들은 10대 임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정은 불안정하여 폭력이 일상화되고 이혼이 잦다. 이들은 최악의 경우에는 마약에 손을 댄다. 저자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책에는 무너진 도시의 일상이 많이 묘사된다. 그중에 다음 문장은 그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가 사는 세상은 정말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 가난한 살림에서 지출을 늘려나간다. 거대한 텔레비전과 아이패드를 산다. 이자가 센 신용카드나 고리대금을 얻어서 자신들에게 좋은 옷을 입힌다. 필요하지도 않은 집을 매매하고, 그걸로 재융자를 받아 소비를 더욱 늘리다가 결국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떠나며 파산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절약은 우리의 존재에 반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상류층인 척하려고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우리를 덮고 있던 거품이 걷히고 나면(파산을 당하든 식구 하나가 다른 식구들을 우둔함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내든), 남아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의 대학 학비도 없고 재산을 늘릴 투자금도 없고 실업을 대비할 불황 대비 자금도 없다. 물론 이런 식으로 소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우리도 잘 안다. 반성하고 자책할 때도 있지만, 결국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
가정은 혼돈의 도가니다. 마치 미식축구를 관람하기라도 하듯 소리를 지르거나 서로에게 언성을 높인다. 마약에 빠진 식구가 집집마다 적어도 한 명씩은 꼭 있다. 아버지인 경우도 있고 어머니인 경우도 있으며 둘 다인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를 특히 더 받을 때면, 어린 자녀가 보고 있든 말든 다른 식구들 앞에서 서로를 때리기까지 한다. 이웃들은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듣고 있다.
 우리에게 재수가 없는 날이란 싸움을 멈춰달라며 이웃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는 날이다. 자녀들은 위탁 가정으로 보내지지만, 결코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사과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말을 믿는다. 물론 우리도 그때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우리는 또다시 부끄러운 짓을 일삼는다.
 우리는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부모가 됐을 때도 자녀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자녀들의 학교 성적은 형편없다. 성적을 핑계로 화를 내는 일은 있지만, 자녀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을 평화롭고 조용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없다.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희망이 없는 가정과 도시는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무절제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은 현실을 무능력한 정부와 일자리를 뺏어가는 중국 탓으로 돌린다.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저자는 분노만으로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 편이 되어 줄 안정적인 가정과 나 또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멘토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불안정한 삶을 살면서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조부모님은 항상 자기편이라는 믿음과 행복한 가정을 보여준 이모와 누나가 멘토 역할을 하여 자신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었다.

 부모가 아무 때나 집에 드나드는 걸 막으려고 엄마와 의붓아버지가 멀찌감치 이사를 갔을 때조차도 할모와 할보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아버지 후보자들이 꾸준히 드나들었으나, 주변에는 늘 따뜻하고 상냥한 남자 어른들이 있었다. 내게 잘못한 것도 많았지만, 엄마는 배움과 학습을 향한 평생의 열정을 내 안에 심어줬다.
 또, 내가 누나보다 몸집이 더 커지고 난 뒤에도 우리 누나는 나를 보호해줬다. 이모부와 이모는 내가 물어보지도 못하고 절절매고 있을 때 내게 대문을 활짝 열어줬다. 그보다 한참 앞서서 이모 내외는 사랑스럽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졌다. 여러 선생님, 먼 친척들, 친구들 또한 내게 많은 힘을 실어줬다.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겪은 것과 유사한 형식의 개입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이 분노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현실을 개선시키기에는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바꿔나가야 할지 막막하기에 남을 탓하는 것이다. 위에서 나온 소득불평등의 코끼리 곡선은 코로나 19 이후로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개인들에게 직접 돈을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여분의 돈으로 과소비를 하며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댄다면 그들의 삶이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직접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삶에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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