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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 Soup Aug 27. 2021

자연은 권태를 모른다

한강에서 #1

“자연은 권태를 모른다.
권태는 도시의 산물이다.”      -헤르만 헤세


 첫 필기시험을 앞두고, 나는 스스로 필요 이상으로 훨씬 많은 긴장과 부담을 갖고 있었다. 목과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긴장성 두통이 생겼고, 밤마다 잠에 들지 못했다. 평소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하루하루 생명선을 겨우 연장해가는 느낌이었다.

 필기시험을 5일 앞둔 날, 오랜만에 학교 수업이 없어 하루 종일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 도무지 무언가를 할 의욕이 생기지를 않았다. 아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책상 앞에 앉기도 싫어 그렇게 몇십 분을 서 있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집에서 삼 분 정도만 걸으면 한강이 나온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는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항상 한강으로 달려간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락 음악을 미친 듯이 크게 틀고 달리기도 하고, 음악 없이 그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반짝이는 강물을 보기도 한다. 사실 집에서 한강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는 항상 의심을 한다. ‘이미 한강에 몇십 번이나 갔잖아. 언제나 같은 풍경에 이제 나는 질려버렸을 거고, 아무 위로도 받지 못할 거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언제나 한강에 가면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어느새 개여 있는 걸 느낀다.

 이 날은 집에서 나오자마자 복슬복슬 하얗고 귀여운 비숑을 만났다. 강아지와 산책길이 겹치는 건 아주 럭키한 일이다. 한강에 도착해 다리를 건너면서 강을 바라보니 물을 마시는 오리들이 보인다. 뽕짝을 크게 튼 아저씨가 단련된 허벅지 근육으로 자전거를 씽씽 타고 지나간다.

 몇십 번은 본 장면들인데, 분명 지겨워야 하는데, 진한 주홍색 노을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과 사람들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잠시 잃어버렸던 내 감각들이 선명하게 차오른다.


 항상 나는 나의 불안, 우울, 슬픔을 한강에 던져 넣으러 간다. 사람으로 치면 사실 감정 쓰레기통 취급이 아닌가? 하지만 자연은 사람보다 관대하기에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따스하게 나를 맞아 준다.


 “자연은 권태를 모른다.”

 경험보다 문장으로 먼저 만난 그 진리가 내 안에서 이 날의 경험을 통해 완전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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