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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 Soup Jan 30. 2022

우리는 다시 사울 레이터가 될 수 있을까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갈 만한 전시회를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지금 계절과 어울리는 작품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냉면이, 겨울에는 뜨끈한 우동이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굳이 지금 봐야 하는 게 아니더라도 '지금이 딱이야!'라는 감이 오는 작품들이 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뉴욕의 거리, 큼지막한 빨간 우산을   빠르게 걸어가는 듯한 여. 올겨울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가서 보고 싶다고 생각한 , 사울 레이터(Saul Leiter) 사진이었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겨울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사진들에는 창문을 비롯해 계단, 문틈 등 프레임 속으로 보이는 다양한 일상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처음에는 이 사진들이 '좋다'고만 느끼고, '특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프레임 너머로 사진을 찍는 게 너무 유행인 시대에 살아서가 아닐까, 그가 몇십 년도 전에 (당연히 인스타그램, 스마트폰 자체가 없을 때) 이런 사진을 찍었는데도 말이다. 내게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특별'해진 것은, 그의 인생을 알게 된 이후부터다.


 전시회에 가는 이유는 가벼울지라도, 막상 가면 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지는 법이다. 사울 레이터는 이십 대 때부터 사진을 찍어왔지만, 놀랍게도 그의 사진들은 평생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가 80세가 되어서야 재조명받았다고 한다. 숨이 턱 막혔다. 지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 사진들이, 몇십 년동안이나 그의 아파트 서랍 안에 갇혀 있었다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좋은 사진을 찍으면 뭐 하나?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데, 참, 안타깝다. 라며 생각할 즈음에, 프로젝터에서 사울 레이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책을 보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과 있는 게 훨씬 좋아요.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더 나아요."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그에 대해 함부로 연민을 품은 것이 부끄러웠다. 어쨌든, 그가 자기만의 예술에 심취해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예술가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진가였다는 게 정말 맘에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솜스>라는 챕터는 가장 인상 깊었다.

 솜스(Soames)는 사울 레이터가 평생 사랑했던 연인이자 그의 소울 메이트였다. 사울 레이터가 찍은 그녀의 사진들은, 아름다웠다. 그건 얼굴이 갸름하다거나, 눈이 크다는 식의 인상은 아니었다. 그저 찍는 사람의 애정 어린 시선 자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인 것 같다. 사울 레이터에게, 솜스는 창문 너머에 있지 않았다. 그의 다른 사진들과 달리, 솜스는 바로 앞에서, 어떤 장애물도 없이, 그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둘의 서로를 쳐다보는 애틋한 눈빛이, 내게는 그 어떤 사진보다 가장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좋아서, 사랑해서 찍는 사진은 특별하다.

 사울 레이터의 '너머로 본다'는 행위는 다른 이들은 지나치는 것을, 지나치지 않으려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50년도 더 지난 지금, 창문 너머의 순수함은 퇴색되어버린 듯한 감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프레임과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애정과 순수함 없이도 멋져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서는, 어떤 사진이 전시회에 걸릴 만큼 좋은 사진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좋은 사진'이 '많은 좋아요'를 받는가? 아니면, '많은 좋아요'를 받은 사진이 '좋은 사진'인가? 여기서 또 오십 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누구의, 어떤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아빠가 준 디지털카메라로 주유소에 핀 꽃을 찍던 나는, 다시 사울 레이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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