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시(山梨)에서의 첫날
‘후지산이 있다’
그게 내가 아는 야마나시에 대한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 야마나시에 가자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도쿄 여행을 할 예정이었고, 도쿄를 가기 전에는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에 갈 예정이었다. 그 공연은 ‘야마나시 후지큐 하이랜드’에서 열린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어디지? 하며 찾아봤더니, 후지산이 있고 왠지 오시카와는 달리 한가로워보는 시골 동네 같은 이미지가 뜨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래. 새로운 지역에서 공연만 보고 오는 건 손해 아닐까? 여기서 자전거 타는 법도 배웠겠다, 자전거를 타며 자연 속을 달려야지!라는 정말 단순한 생각으로 야마나시행 심야 버스를 예약했다. 나름 해외에서 몇 달 살아봤겠다, 어딜 가도 잘 다닐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듯하다.
심야 버스를 타고, 아침 9시. 후지산역에 도착했다.
정말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하늘은 파랗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설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가슴 한 구석에서는 설렘이, 또 다른 한 구석에서는 긴장감이 피어났다. 무서울 것 하나 없는 평화로운 낯선 경치에 나는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아마 타이밍 때문이다.
야마나시에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 사람들과 함께였다. 전날에는 R양과 내 방에서 밤새 <소년탐정 김전일>을 봤고, 심야버스에 타기 직전까지는 일본인 친구 ‘오챠’와 어머님과 함께 쿠시카츠를 먹고, 버스 정류장 앞에서 포옹까지 했다. 그런 정든 오사카에서 벗어나, 무거운 캐리어를 혼자서 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왔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혼자’였다.
거기다가 하필 야마나시는 ‘보란 듯이’ 예상을 빗나가는 곳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버스를 타고 온천을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단 한 번도 지하철이나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일본의 시골도 시골인 것이다! 분명 올 때가 되었는데, 버스는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쌩쌩 달리는 큰 차들이 마치 내게 이렇게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왜 온 거야? 여기는 여행지가 아니야!” 도로 바로 옆에 딸랑 이정표만 있는 정류장에서, 자유를 느끼려 했던 나는 한껏 쫄아 있었다.
어찌어찌 버스를 타고, 넓고 한적한 온천에서 몸을 데웠다. 몸이 따뜻해지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온천에는 넓은 식당이 있었다. 창밖으로는 초록빛 나무들이 보였고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자판기로 주문한 가츠동이 나와서 식권을 건네려다가, 실수로 내 체크카드를 건넸다. ‘하하’ 웃는 식당 아주머니의 웃음에 갑자기 탁 하고 긴장이 풀렸다.
그래, 여기는 내가 와서는 안 되는 곳은 아니야. 공복이어서 더 예민했던 걸지도 몰라. 일단 밥을 먹자!
‘아, 역시 일본에서 먹는 가츠동은 다 맛있어!’
초록초록 주차장 뷰를 보며 먹은 따끈따끈한 가츠동은, 지금까지도 내가 먹어 본 가츠동 중 1위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