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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Dec 01. 2020

층간소음이 내 마음을 모나게 만들었습니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내 마음, 진짜 터질 것 같아요

아무런 불만이 없었던 주말 부부 생활이 서러워졌다. 이럴 때 대장을 하라고 만든 남편이 저 멀리 있어서 평일에 일어나는 자잘한 분쟁들은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쟁을 해결하는 데 나는 별다른 능력도, 의지도 없다. 이번 집은 망했어, 체념하고 드러누워 글이나 쓴다. 윗집 아이가 거실에서 작은 방으로, 작은 방에서 안방으로 뛰어다니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서.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공동주택 생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진상 이웃을 만난 적도 없었고, 우리 가족들도 공동주택 수칙을 마음에 새기며 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하며 살았다. 늦은 시간엔 청소기, 세탁기 돌리지 않기, 악기 연주하지 않기, 최대한 조심스레 걷기, 강아지가 짖지 않게 혼자 오래도록 방치하지 않기. 게다가 나나 가족들이 원체 둔하기도 둔하고, 그러려니에 능한 사람들이라 이웃집과 다툴 일이 거의 없었다. 첫 신혼집에 살 때, 윗집에 아기가 태어나 한 3개월을 매일 새벽 1시~2시경 아이의 울음소리에 깨었다 다시 잠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아기는 원래 우는 건데 뭐 어쩌겠어. 곧 지나갈 시기인데 서로서로 이해해야지. 엄마아빠는 또 얼마나 힘들겠어. 엄마의 목소리에 잦아드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들기를 몇 달, 새벽 시간 아이의 울음은 곧 사라졌다. 친정집에 살 때는 주말마다 할머니 집에 놀러 오는 손자들이 도도도,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것도 그냥 넘겼다. 애들은 원래 뛰는 거고, 할머니 집이 넓으니 더 뛰어다니고 싶을 거고, 주말에 잠깐이니 그냥 두자. 그냥 그렇게 서로서로 이해하고 지나가는 게 미덕이라 여긴 공동주택 생활이 25년. 그동안 큰 싸움이 나거나 했던 일은 정말 없었다. 우리 가족이 운이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공동주택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처음으로 경비실에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발단은 우리 집의 인테리어 공사였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를 매매하고 이사해 들어오게 되면서, 끔찍한 집 상태에 도저히 공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처음 내 집이 생기는 것이니 제대로 공사를 하고 싶어 꼼꼼히 찾아보고 업체를 선정했다. 제안해 주신 디자인과 자재들이 모두 취향에 맞아 흡족한 마음으로 공사 일정을 받아 보았는데, 세상에나. 무려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는 물음에 업체는 최근 코로나로 인테리어 공사가 붐이기도 하고, 주 52시간 근로 제한이 생겼기 때문에 웬만한 공사는 한 달 이상이 걸린다고 답했다.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했고, 업체에서는 우리 라인 입주민들에게 공사 동의서를 받았다. 라인 전체 주민들 중 딱 한 곳이 비동의로 'X'를 표기하였는데, 그게 바로 우리 윗집이었다. 아이가 있어서 공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해가 됐다. 어린아이가 있는데 주변 집이 공사를 하면 아이가 정말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 공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우리는 업체에 공사 일정 공고를 붙일 때 시끄러울 수 있는 날에 대해서 최대한 꼼꼼하게 설명을 적어달라고 요청드렸다. 실제로 우리가 진행한 업체에서는 전에 본 적 없는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소음이 심한 날을 표기해주셨다. 매일 벽을 뚫거나 철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운 날은 한 달 동안의 공사 기간 중 10일 정도 된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x월 x일, 타일 철거로 심한 소음 발생. x월 x일, 벽체 신설로 인한 소음 발생. x월 x일, 가구 설치로 인한 타공으로 산발적인 소음 발생. 인테리어를 진행 중인 다른 집이 붙인 날짜만 몇 개 적힌 공고에 비하면 정말 상세한 설명이었다. 이렇게 적어두면 소음이 심한 날은 미리 예상하실 수 있으니 조금 낫겠지. 남편과 나는 긴 공사에 죄송한 마음에 주변 집들에 쪽지와 선물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n호입니다. 저희가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로 한 달간 잦은 소음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해야 할 공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 몇 년을 살게 될지 모르는, 아이가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지도 모르는 새 집을 위해서는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사 기간 동안 현장소장님을 찾아뵐 때마다, 소장님은 윗집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셨다. 윗집 사모님이 소음이 심하다고 미리 게시해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도대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시끄러운 거냐, 왜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가 없냐, 그런 걸 정해놓지 않고 일을 하냐 등의 이야기를 한다는 거였다. 소장님 입장에서는 작업은 해봐야 아는 것이라 그 자리에서 답해드릴 수가 없고, 최대한 일찍 끝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저녁 시간에는 아예 작업을 하지 않는데도 매번 찾아와 신경질을 내니 작업하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나도 어쩔 수가 없으니 고생 많으시네요, 나중에 저희가 한 번 찾아뵐게요, 하는 말과 함께 커피와 주전부리를 사다 드리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변인들에게 윗집에 뭐라도 더 갖다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공고도 다 붙이고, 공사 전에 인사도 드리고 다 했는데 더 어떻게 해. 잘 지나갈 거야.' 찜찜했지만 그 말을 믿었다. 우리가 사는 내내 공사를 하는 건 아니니 공사가 끝나면 괜찮아지겠지. 나쁜 일이 생기진 않겠지. 공사 마치고 또 잘 인사를 드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인테리어가 끝나고 이사를 들어왔다. 이사하면서도 이런저런 사고가 많았지만 어쨌든 한 달간 고생하신 주변 집들에 다시 감사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스크 한 박스씩과 쪽지를 한 번 더 돌렸다. '인테리어 공사하는 동안 많이 시끄러우셨을 텐데 양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전자제품들을 설치하고 나면 모든 설치가 완료됩니다. 하루만 더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계시는 집에는 직접 인사를 전하고, 안 계시는 집에는 문고리에 선물을 걸고 내려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새 집에서의 첫 날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벽걸이 TV를 설치하면서 일이 터졌다. 경비실에서 전화가 오다 못해 경비원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TV 설치를 하면서 드릴로 벽을 뚫게 되어 꽤 큰 소음이 났고, 그 순간부터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소리를 나도 들었다. 바로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고, 오늘 TV와 에어컨 설치가 있어 시끄럽다고 말씀을 드렸다. 동시에 어제 제가 주변 집에 말씀은 해두었노라고,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자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곧 다시 TV 설치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까 통화했던 선생님께서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윗집에서 시끄럽다고 난리가 났다며, 아무리 얘기를 잘 전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으니 직접 같이 올라가서 말씀을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고, 나는 죄송한 마음에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윗집으로 올라갔다.


윗집 문이 열리고, 나는 아랫집인데 죄송하다고, 오늘까지만 시끄러우니 조금만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화살 같은 말들이 날아왔다. "한 달 동안 공사한다고 붙여만 놓으면 다예요? 오늘까지 시끄럽다고 쪽지만 남기면 다예요? 애 키우는 집은 어쩌라고 공사를 그렇게 하냐고요!" 갑작스러운 고함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저희 집에도 TV랑 에어컨을 설치는 해야 해서요, 어제 이사를 와서요, 달기는 달아야 하는데, 제가 어제 말씀을 드린다고 쪽지랑 마스크를 남겼는데..' 횡설수설하는 동안 윗집 이웃은 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언제 끝나는데요? 몇 시까지 이러는데요?" 순간 현장소장님이 하셨던 말씀들이 생각났다. 어떡하지. 난 잘 모르는데. 에어컨까지 설치를 마치려면 적어도 두세 시간은 더 걸릴 텐데. 죄송하지만 끝나는 시간은 잘 모르겠다는 말에 윗집은 더 크게 소리쳤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에요! 한 달 동안 그거 공사한다고 붙여놓기만 하면 다냐고요! 쪽지도 어제 저녁에야 봤어요! 그거 남기기만 하면 다냐고요!" 24개월은 되어 보이는 아이가 짜증스레 소리치는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더 해 드려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내려가서 작업이 언제쯤 끝날 런지 여쭙고, 다시 윗집으로 올라가 최대 세 시간쯤 소요될 수 있다고 알렸다. 윗집 이웃은 아이를 안고, 아이의 팔에 내가 쪽지와 마스크를 넣어두었던 봉투를 걸어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이건 가져가시는 게 좋겠어요." 순간 나도 조금 짜증이 났다. 더 어떻게 하라는 거지. 티비를 걸지도 에어컨을 설치하지도 말고 살라는 건가.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올라오는 화를 꾹 참고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아이의 팔에 걸린 종이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내려오니 TV 설치 기사님들과 에어컨 설치 기사님들이 괜찮냐고, 어떡하냐고 물으셨다. 일단은 괜찮다고, 진행하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거실 한 구석에 앉아 있는데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윗집이 아이에게 '나와!' 하고 큰 소리로 신경질을 내며 현관문을 쾅 닫고 집을 나가는 소리를 들으니 더더욱 머리가 지끈, 아팠다. 뭘 더 어떻게 해드렸어야 하는 거지. 윗집에 아이가 있으니까 공사를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가? 아무것도 벽에 박지 말고 그냥 살았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뭘 더 했어야 되는 거지. 열이 받아 씩씩거리며 가족 카톡방에 마구 메시지를 보냈다. '그걸 붙여놓으면 다냐는데? 쪽지만 남기면 다냐고. 아니 그럼 뭘 더 어떻게 해야 해?' 토독토독 소리를 내가며 단체방에 감정을 쏟아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와다다, 이야기를 전하고 나니 화는 조금 가라앉는 듯했지만 계속 마음이 어지러웠다.


코로나로 아이가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할 거였고, 게다가 큰 소음이 며칠 씩이나 계속되니 혼자서 아이를 돌보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걸 안다.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주시고, 죄송하다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마스크를 돌려줄 건 또 뭐람! 윗집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아직 소용돌이치고 있는 분노가 번갈아 찾아왔다.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어. 완전 독박 육아인 것 같았는데 진짜 고생일 거야.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서 주변 집 공사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다들 참으면서 사는데. 나도 참았는데! 오락가락하는 마음 덕에 속이 다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설치를 다 마치고 모두가 돌아간 뒤, 늦은 밤까지 한참을 낮의 일을 곱씹다가 겨우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 얼마나 힘드셨겠어. 얼마나 시끄러웠겠어. 내가 화가 나는 거 자체가 적반하장이다. 먼저 괴롭게 해 놓고 내게 보인 태도에 대해 욕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다음에 뵙게 되면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자. 음을 다독이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부터, 윗집 아이가 집안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우리 집을 가득 메웠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뛰어다니는지 경로를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소음이었다. 전날 윗집에 방문했을 때 얼핏 보았던 집 안에 소음 방지 매트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기억을 되짚으며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는 마구 뛰는데 말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온 집안을 뛰어다니던 아이의 발소리는 1시간이 지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두 시간쯤 지나자 다시 시작됐다. 있는 힘껏, 아무런 제지도 없이 뛰고, 잠시 쉬고. 이게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반복이었다.


며칠은 참았다. 아이야 원래 뛰는 법이니까. 지금까지는 낮에 아랫집에 사람이 없어서 뛰어놀아도 괜찮았는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부업으로 주로 낮에 일을 하곤 하는 나에겐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였지만, 우리 집도 한 달 동안 시끄러웠으니까, 공동주택 생활인 만큼 나도 조금은 이해를 해야 하니까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이의 뛰는 소리가 점점 더 심해졌다. 어떨 땐 어른들도 뛰는 것 같았고, 바닥을 탕탕탕탕 주기적으로 치는 소리도 났다. 12시가 넘은 새벽에 바닥에 뭔가 떨어져 굴러다니는 소리도 났다. 이걸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지금까지였다면 굳이 윗집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정도의 소음이기도 했다. 아이가 뛰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고, 신경엔 매우 거슬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것도 밤 10시 정도면 멈췄다. 몇 개월만 더 자라도 덜 뛰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 의자를 벅벅 끄는 소리, 12시 넘어까지 나는 구슬 굴러가는 듯한 소리 같은 건 견디기 힘들었다. 소음도 소음이었지만 이전에 윗집이 보였던 태도가 떠올라 더 괴로웠다. 만약 아무 일도 없었다면, 평소의 나라면, 예전의 내 스타일대로라면 아이를 위한 작은 선물이라도 사다 드리며 아이가 뛰는 것만 줄여달라고, 조금만 조심해 달라고 전했을 텐데, 그러기가 정말 싫었다. 웬만하면 친절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흔들렸고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갔어야 하는 일에 속 좁게 굴고 있는 내가 싫고, 예민하고 불편한 이웃이 되는 게 너무나 싫었다. 내가 왜!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이웃집에 짜증을 내야 해!


일주일 정도를 참던 나는 결국 밤 10시 넘어까지 이어지는 아이의 발소리에 경비실을 통해 윗집에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당연히 전해드려야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고 전화를 끊으셨고 곧이어 윗집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까지 들리는 걸 보니 기본적으로 방음이 잘 안 되는 건 맞나 보네. 좀 더 이해를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차에 전화를 끊은 윗집 사람이 큰 소리로 "아랫집에서 애 뛴다고 전화했다는데?"라고 말하고는 두 부부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놀랄 만큼 또렷하게 들렸다. 말소리가 이렇게 잘 들린다는 건 무슨 뜻일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도 아이는 뛰었다. 그 이후로도, 멈추지 않고 30분을 계속 더. 그때 깨달았다. 이건 정상적인 이웃과의 관계가 아니로구나. 내가 잘한 것도 없겠지만, 굳이 앞으로 더 잘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사를 하고 나면 또래의 이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동네 강아지 엄마들과, 수영장 아주머니들과, 같은 동 이모들과 친목을 다지는 걸 보며 나도 비슷한 나이대에서 가질 수 있는 고민들을 나누고, 서로 돕고, 재밌게 지낼 수 있는 이웃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엄마는 이웃과의 첫 단추가 엉망인 것 같아 슬퍼하는 나에게 '너 같이 퍼주기 좋아하는 애랑 친하게 지냈으면 같이 커피도 먹고, 잠깐 애도 봐주고, 급할 때 차로 병원도 태워다 주고 그랬을 텐데. 그 사람이 안 된 거야.' 하며 위로해 주었지만 큰 도움은 안 됐다. '아기 낳으면 조리원 동기나 만들어' 하는 말도 내 기분은 달래는 덴 별 소용이 없었다. 동네 친구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관계가 되어버렸네. 착잡했다. 얼핏 보았던 집의 상태로 보아 전세로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언제쯤 이사를 나가시려나, 알고 싶어진 내 마음이 정말 못나보였다.


지금도 윗집 아이는 신이 나서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있다. 아이를 자제시키는 소리 같은 건 당연하게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말로 해서 해결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에 자포자기한 나는 아이의 발소리를 적당히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노래를 틀고 작업을 한다. 간혹 소음이 클 때는 잠깐 휴대폰을 들어 동영상으로 천장을 찍으며 녹화를 한다. 소파에 앉아서 얼굴 높이로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해도 녹음이 될 정도의 소음을 매일 기록해두면,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 경비실이나 관리사무소에 얘기할 때 써먹을 수는 있겠지. 하다못해 우리 집 덩치가 주말에 들고 올라가서 보여줄 수라도 있겠지. 커튼 달 때는 또 어쩌냐, 벽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사는 박아야 되는데. 줄줄이 이어지는 고민에 아파오는 머리를 싸매고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마음이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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