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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Dec 04. 2020

나이를 먹는다는 새로운 기쁨

20대엔 몰랐던 30대의 안정감

12월. 코로나로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전처럼 분위기가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연말은 연말이다. 코끝이 시리고 볼을 감싸는 공기가 차가워지는 이맘때쯤엔 평소에 일기 같은 덴 관심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저녁마다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걸쳐 앉아 천천히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2020년, 나의 서른 하나. 모두가 그렇듯 올해는 할 수 있었던 게 별로 없었고, 기억나는 것도 많지 않다. 불안과 경계심, 두려움 같은 것들을 300일이 넘도록 마스크 속에 숨기고 다녔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던 한 해. 나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빼앗긴 많은 자유와 가능성들이 아쉽고 서러운 해. 대부분의 시간을 어딘가에 갇혀 있었기에 이룬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마냥 무기력하게 앉아있지만은 않았던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올해 나는 부서를 바꿔보기도, 휴직을 하고 임신에 도전하기도 하며 꽤 분주했고, 그 가운데서 이유 모를 여유를 즐겼다. 아마 이게, 30대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른 살, 그러니까 30대에 막 돌입할 당시에 나는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그대로 회사를 다닐 것이고, 가족들과 남편에게 변함없이 사랑받을 것이었다. 스물에서 스물 하나가 되는 거나,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거나 똑같지. 친구들이 '서른 즈음에'를 열창하며 연말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왜들 저렇게 난리일까, 별거 아닌데, 하고 시큰둥하게 맥주나 마셨다. 그런데 서른 하나에서 서른둘이 되는 지금, 지나간 20대를 이제야 바라보며 뒤늦게 서른을 기점으로 나의 세계가 크게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20대 후반을 살던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고. 그때 나는 인생이 벌써 재미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며 마주치는 모든 일이 그저 그랬고, 예전 같았으면 기뻐서, 놀라서, 슬퍼서 호들갑을 떨었을 일에도 무디게 반응했다. 이제 고작 20대 후반, 내 안의 소녀 같음이 벌써 사라진 건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훨씬 젊고 할 수 있는 게 많은 내가 이렇게 인생이 재미가 없는데 엄마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 철없고 못난 물음에 엄마는 읽던 책에서 시선을 떼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난 재밌는데?" 대충 대답하고 다시 시선을 거둔 엄마를 멍하니 쳐다봤다. 재밌다고? 매일 강아지를 산책시고, 수영장 아줌마들이랑 놀고, 집에서 책 보는 게 다인 쳇바퀴 같은 삶이 재밌다고? 캐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뚱한 표정을 짓고 있자 엄마는 덧붙였다. "그 시기를 잘 지나면 다시 재미있는 시기가 와. 그랬다가 또 아이 때문에 너를 잃은 것 같은 시기가 오고, 그다음엔 인생이 참 편하고 즐거운 때가 와. 넌 지금 잘 흘러가고 있는 거야. 인생의 때에 맞춰서."


그때의 나는 인생의 때가 아닌 의미에 골몰했다. 뭐 하나를 해도 거기에 숨은 의미를 찾았고, 의미 없는 것들로 채워진 하루가 간다는 게 슬펐다. 지루하고 지겨웠다. 소중한 젊음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게 짜증이 났다. 특별히 하고픈 것도 없었으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 했다. 별로인 하루하루가 쌓이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겨움에 몸서리치는 동시에 나는 많은 것에 집착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맹목적인 지지, 당장 이루고 싶지만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나의 꿈, 의미 없는 사람들로부터의 관심, 재미없는 삶을 만든 그 모든 원인들에 대한 탐구.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로 매일 밤 머릿속을 채워봐도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어제와 똑같은 다음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작됐다. 그렇게 사는 게 재미없고 서러운 시간들을 지나 도달한 지금, 서른 하나의 나는 하루하루가 간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다. 무탈히, 무난히 흐르는 시간. 오늘도 건강하게 침대에 누워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다는 작은 다행이 참 만족스럽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배우 공유는 지금의 자신이 만족스럽고 좋아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렇다. 더 나이를 먹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젊고 예쁘고 반짝였던 20대가 그리 그립지 않다. 젊음과 활기야 당연히 좋았지, 그렇지만  20대는 치열하 힘겨웠다. 그걸 다 지나 겨우 안정된 지금의 삶에 도달했다. 며칠 밤을 새도 멀쩡하던 체력과 아직 남은 기회가 많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패기는 그립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내 삶이 주는 안정감이 만족스럽다. 일을 해서 돈을 벌었고,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다. 젊었지만 능력이 없었고, 뜨거웠지만 불안정했던 20대는 저물고 조금 지치지만 여유 있고, 적당히 온건한 관계를 유지하는 30대가 나름 재미있다.


20대엔 사회가 나를 위해 미리 세워둔 시간표 빈칸 없이 빽빽한 듯 느껴졌다. 스물둘엔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했고, 스물셋엔 인턴을 하고 스물넷엔 취직을 해 신입사원이 되어야만 하는 인생의 시계. 스물여섯, 일곱 쯤엔 결혼할만한 짝을 만나 안정적인 연애를 꾸리다가 스물여덟, 아홉 쯤엔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사회가 정한 일정표가 빡빡하게 내 삶에 들어차 있었다. 시계는 힘차게 돌았고, 거부할 능력도 용기도 없었던 나는 허덕이며 그 시간표를 좇았다. 차분히 그 시간표를 따라가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급급했다. 나는 왜 안 되지. 왜 지치지. 헐떡이며 남들을 쫓아 뛰는 와중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표와 내가 따라가고 있는 시간표를 비교했다. 앞서 뛰고 있는 롤모델들은 언제 도전을 시작했는지 자주 살폈고 내가 그러지 못할 때는 깊은 좌절을 맛봤다. 지겨워하고 고통스러워 하기에 너무 바빠 기쁨 같은 건 느낄 새가 없었다.


그때의 내가 미운 건 아니다. 20대를 잘못 보냈다고, 좀 더 여유 있게 살았어야 한다고 돌아가 꾸짖고 싶지도 않다. 그때 나는 세상이 나에게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모든 것들이 미웠지만 최선을 다했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몰랐다. 바보라서, 한심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20대는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그 구간을 내 최고 속도로 달려야만, 지나와야만 시간표쯤이야 무시해버려도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린 20대의 나는 30대의 나에게 지금의 여유를 선물했다. 그 시간을 죽어라 달려서,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서 얻어낸 작은 성취를 30대의 나에게 양보했다. 그때의 나는 틀리지 않았다. 잘했고, 수고했다. 만날 수만 있다면 고생했노라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나의 20대가 기특하고 고맙다.


20대의 나에게서 선물을 건네받은 지금, 나는 세상이 미리 정해둔 일정표를 어겨도, 조금 지각하더라도 별 일이 없이 인생이 흘러간다는 걸 안다. 게다가 30대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가지각색이라, 시간표를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좀 더 알게 된 나는 고지를 바라보는 태도도 바꾸었다. 20대에는 내가 언제쯤 원하는 자리에 갈 수 있을지, 내 꿈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과연 내가 꿈이란 걸 이룰 수는 있을지 조바심을 내기 바빴지만 지금은 언제 시작하든 꾸준함을 좇다 보면, 그가 언젠가 나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남들은 몇 살에 무얼 하고, 몇 살에 무얼 했더라 하는 빡빡한 경쟁에서 살짝 벗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그리고 결국 과감히 발을 빼버릴 용기가 생긴 30대의 여유가 좋다.


모든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아 심드렁하고, 자극을 느낄 수 없었던 20대를 지나 다시 많은 것으로부터 기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30대가 왔다. 지금의 여유가 지나가고 나면 언젠가 아이 때문에 나 자신을 잃은 것 같은,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될 때가 올 것이고 그가 지나고 나면 자식들을 다 키워 편하고 느긋한 삶을 즐길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그 흐름이 인생이라면, 내 인생은 적당한 바람을 타고 잘 흘러가고 있다. 때론 강한 물살에 뱃머리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흐르다 보면 언젠가 바다에 닿으리라는 믿음으로, 흐르는 강물을 타고 간다. 계속 노를 저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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