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하는 것들
*전반적인 영화의 흐름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중에게 감명을 주는 영화는 대부분 감명 깊게 보는 편이다.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영화도 좋아해서 문제면 문제였지, 대중이 극찬하는 영화를 별로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영화 '소울'을 보고 나온 나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모두가 걸작이라 하는데, 픽사의 영화 중 가장 앞에 두어도 손색이 없다 하는데, 온통 극찬뿐인데 내게는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내가 놓친 것이 있나?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기대가 너무 컸나? 이럴 리가 없는데. 당황해서 함께 영화를 본 동생에게 감상평을 물었지만 동생 역시 최선의 영화라고 평했다. 뭐야, 나만. 나만 이러네. 잔뜩 기대했던 영화와 그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라 상심하고 말았다.
쉽게 지나치곤 하는 삶의 순간들에 대한 예찬. 숱하게 마주쳤던 이야기다. 삶 자체를 옹호하기 위해 도구처럼 쓰인 죽음 역시 뻔하디 뻔한 소재다. 그래도 기대가 됐던 건 'Great Before'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내 삶의 이전. 우연처럼 나를 구성하고 내 삶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들. 픽사다운 상상력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철학적 이야기는 깊이 다루고 싶지 않다는 듯 사소하고 감각적인 삶의 부분 부분을 향해 달려 나간다. 아, 좀 아까운데. 이렇게 가볍게 지나칠 아이템이 아닌 것 같은데. 아쉬워하는 와중에도 영화는 계속 진행된다. 제작진의 전작들로 알 수 있듯 영화는 순수함과 불변을 노래한다. 영혼의 불꽃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 22와 삶을 되찾아야만 하는 조. 두 사람의 영혼이 뉴욕에 떨어져 뭉툭하게 마모된 줄 알았던, 하지만 실은 너무나도 예리하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던 삶의 순간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마주한다. 꿈의 무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지나치려 하는 조와 조의 몸에 닥친 모든 장면을 음미하려 하는 22. 강렬히 대비되는 두 영혼의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야 그들은 깨닫는다. 영혼의 불꽃이란 삶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특별할 필요도 없고 잘날 필요도 없는, 삶을 즐기려는 태도라는 걸. 그게 네 삶을 지탱시키고 네 영혼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라는 걸.
메시지는 좋았다. 어디서 많이 본 닳고 닳아 낡아버린 메시지라도 새로운 상상력으로 포장하니 꽤 근사한 노래로 들렸다.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영화는 네 영혼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보편적인 소재들을 통해 노래했다. 삶은 아름답지. 살아볼 만하지. 대단히 멋진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고 가치 있지. 영화가 던진 메시지를 꿀떡 받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마음에 찝찝하게 남은 것은 내가 영원처럼 품고 사는 '꿈'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건 내 삶을 둘러싼 일상과는 완전히 별개였다. 마음에 눌어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아니, 적어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마지막 순간 그 기대를 배신했다. '네 꿈을 이룬다고 뭐가 달라질까? 과연?'
내 인생이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느꼈던 건 어떤 날의 피자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고, 어떤 날의 하늘이 공허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나를 이끄는 동력이 사라졌을 때 울었다.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슬펐다. 살아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순간의 감각적 즐거움과 삶의 방향이나 목표는 완전히 별개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고, 좋은 음악을 듣다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고뇌했다. 여전히 어떻게 하면 내가 꿈꾸는 내 모습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게 도르테아의 밴드에서 첫 공연을 마친 조가 보여준 태도는 충격이었다. 저렇게 빨리 허무함이 찾아온다고? 첫 공연을 마치고, 내일도 같은 삶이 반복된다는 게 저렇게 허탈한 일이라고? 일주일이, 한 달이 지난 것도 아니고, 집에 도착해 혼자가 된 순간도 아닌 문을 나선 바로 그 순간에 무의미를 느낀다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성취나 의미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그것이 행복을 이루는 근간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그렇지만 그 대비가 내겐 너무 갑작스러웠다. 조는 음악을 할 때 진정으로 즐거워했다. 멋진 사람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을 꿈꿨다. 그건 영화에 등장한 헤지펀드 매니저처럼 행복의 근원을 잊은 맹목적 추구가 아니었다. 도르테아의 밴드를 찾아가 오디션을 보면서도 그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가 음악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무대에 서고 싶다는 목표에 매몰되어 다른 행복을 잊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첫 연주를 마치고 나와서 바로 무의미와 허무를 느꼈을까? 내일 또 나오라는 말에 기쁘지는 않았을까?
어떤 목표나 목적들은 삶을 지탱하고 더 살아가고 싶게끔 만드는 동력이 된다. 삶의 의미가 그 자체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조의 무대처럼 충만한 경험과 성취, 혹은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노력과 열정은 영화의 메시지인 삶 자체를 즐기라는 그 포괄적인 행복에 포함되어 마땅할지 모른다. 삶의 곳곳에 묻어나는 사소한 행복과 대비시켜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어떤 성취는 평생 잊지 못할 커다란 행복이 되곤 하니까. 우리는 절대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을 걸어 도전한 성취에서도 충분히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곤 하니까.
영혼의 불꽃을 위한 빈칸은 삶을 즐기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은 순간 채워진다. 우리 모두 그 칸을 채우는 데 성공해 지구에 내려왔지만 때때로 채워진 줄로만 알았던 안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지니고 있던 행복을 음미하는 능력을 잃은 것처럼, 그 방법을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좌절하고 운다. 영화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보여준다. 일상 군데군데에 자리한 행복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해 이야기하고 싶다. 삶을 지탱하고 영혼을 완성하는 영혼의 불꽃, 그 하나의 자리에 삶의 목표나 방향도 그려 넣을 수 있다고. 어떤 날에는 꿈이 삶을 끌고 가기도 한다고. 바다에 있으면서도 바다를 꿈꾸는 그 마음이 행복이 될 수도 있다고.
** 용기 내어 썼지만 모두가 걸작이라 극찬하는데 저만 그렇지 못한 걸 보면.. 제가 무언가 놓치거나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 싶어 한 번 더 관람할 예정입니다. 아마 이 리뷰도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으실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고 동생과 한참 이야기를 하고, 오늘 아침 일어나 또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본 평은 모두 동생의 의견과 비슷하고요. 두번째 보고 나서 다른 생각이 들면 새로 리뷰를 남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