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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14. 2024

내려놓음

자식은 자식, 나는 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딸자식 하나 있는 게 예민함이 대단하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움직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예민하다. 7년 전에는 우울증이 깊게 찾아와 고비도 여러 번 넘겼었다.
그런 딸을 둔 엄마는 아이를 그렇게 키웠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많은 노력을 한다. 노력 안에는 내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오는 괴로움을 잊으려는 몸부림도 포함이다.  
몸과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수많은 일을 했고 오늘 그 당시 했던 일들을 작정하고 나열해 보려 한다. 허튼짓도 많았고 허튼짓으로 인해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책을 읽었다. 심리학 책과 철학 책들, 그때 읽은 건 도움이 된 것도 많다. 종교 서적도 읽었지만 머리에 안 들어 왔다. 와중에 요가도 했고 단전 호흡도 해봤다. 다도도 배웠다. 다 마음을 다스리겠다고 한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아파져서 마사지도 받았고 두통약도 밥 먹듯 먹었다. 조깅과 산책도 했고 헬스도 다니면서 뻗치는 부정적 에너지를 잠재우려는 시도도 했다. 하나같이 효과가 미미해서 정신과 의사를 찾았고 절과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동시에 점을 본 적이 있다. 딸의 애니어그램도 수시로 테스트하고 싶었지만 비협조적이라 대신 나를 테스트했다.  존재도 의심하면서 신에게 기도하고 애원도 했다.  한약도 먹고 뜸도 뜨고 침도 맞고.... 또 있을 텐데 막상 적으려니 기억이 안 난다.



참으로 가련한 인간이지 않은가. 무엇을 얻기 위해 그 난리를 쳤을까. 정답이 있을 거라고 믿고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하다가 몇 년이 지난 후 부지불식간에 답을 찾게 됐다. 너무나 허망할 정도로 쉬웠다. 깨달음(?)은 의외의 순간에 번개처럼 왔다.
대단한 건 아니다. 대단한 거면 내가 블로그에 끄적거리겠나. 어디 가서 강연 같은 거라도 하고 돈 벌 궁리를 하겠지. 나는 이렇게 해서 괜찮은 부모가 됐다며 입을 놀리고 있을 수도 있겠지.

​뭘 했냐면..... 그냥 포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부모 노릇을 포기했다. 걔는 걔, 나는 나. 내 속에서 나왔지만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는 걸 되뇌고 되뇌고 되뇌었다.  포기는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놓아버림이다. 맥이 탁 풀리는, 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바닥에 탁 떨어뜨리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 있던 자식을 무거운 물건을 내팽개치듯 그냥 확 떨어뜨렸다. 미련 같은 건 1도 없이.  홀가분했다. 홀가분하다 못해 기쁘기까지 했다. 그 후로 나는 아이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됐다. 그때부터 비로소 상황이 분명하게 보였고 조금씩 정신이 맑아졌다.



​​딸애가 3일이나 있다 갔다. 집에 올 때 혼자 온 게 아니라 pms를 데리고 왔다. 이유 모를 짜증과 무서운 폭식과 생뚱맞은 눈물을 번갈아 보여줘서 나와 제 아빠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앞서 말한 대로 해 줄 게 없다. 생리를 대신해줄 수 없는 노릇이고 진즉 병원에 가지 그랬냐며 타박을 좀 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한 달 전에 사서 보낸 보라지 오일의 효과가 신통치 않아 조금 안타까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새 베개를 사러 돌아다니고 새 청소기를 사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3일 후 딸애는 베개와 청소기와 밑반찬과 함께 자기 집으로 사라졌다. 그 애가 난리 법석을 떨고 간 집은 다시 조용하다.









야식도 사주고
아귀찜도 먹이고
파스타도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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