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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l 13. 2024

공백의 시간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_손흥규


편집자에게 글을 보낸 적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 적 없지만 간혹 궁금해하던 게 있다. 책 한 권의 분량을 가늠해 글을 쓰는지, 조금 부족하게 보낸 다음 또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는 편인지, 물론 편집하는 과정에서 글을 더하고 빼겠지만, 넉넉하게 써 보내는지 아니면 빠듯하게 보내는지. 이런 사소한 궁금증이 생긴 이유는 아마 내가 쓴 글에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사생활들의 원고를 메일로 보냈을 때였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곧바로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왔었다. 내 쪽에서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닌지 묻는 내용이었다. 분량을 지나치게 많이 보내셨는데 이게 맞게 보내신 거냐. 편집자는 차분하고 침착한 어조로 질문하고 있었지만 문장에는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작가가 자기가 쓴 글을 책 한 권에 모조리 넣으려는 야망에 눈이 어두워 많은 분량을 써 보낸 거라면 어떡하지. 무슨 이유를 대며 글을 덜어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가 쓴 글을 다 넣으면 족히 350페이지의 책이 될 텐데 이를 어쩌지....

자신감은 없지만 눈치는 빠른 나는 편집자를 재빨리 안심시켰다. 아이고,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를테면 그건 이런 거예요. 쿠팡에서 상하차 알바룰 세 달 정도 해서 목돈을 만든 어떤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자가 좋아하는 게 뭘지 잘 몰라서 머리 터지게 고심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못 찾아서 이거도 사고 저거도 사고 종류별로 다 사는 겁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종류별로 다 준비해 봤어. 뭐 그런 거죠. 그 남자는 여자가 기뻐하는 걸 보고 싶었고 동시에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거잖아요 제가 딱 그 남자의 마음이랍니다. 그러니 마음껏 골라 쓰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다행한 불행을 쓸 때도 그랬고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의 개정판을 쓸 때도 마찬가지. 난생처음 독서 모임의 원고도 분량이 많아서 적지 않은 양을 덜어냈다.
내가 많은 분량의 원고를 쓴다고 해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글쓰기가 쉬워 그러는 게 아니다. 죽을 맛이다.  원고를 쓰면서 나는 내 몸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한 꼭지 두 꼭지 쓸 때마다 허리가 점점 꼬부라지는 것 같다.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폴더폰처럼 접힌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책 두 권 만 더 쓰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걸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지난한 교정 과정을 끝내고 마침내 책이 세상에 나오면 펴지지 않을 것 같은 허리가 짧은 순간이지만 우뚝 서는 날도 있다. 책의 반응이 좋을 때다. 세상 믿을 거 없다는 온라인 서점의 순위에 허리가 반응한다. 그렇게 접혔다 펴지길  반복하는 내 허리가 유치하고 가증스러워서 다시는 순위 따위에 반응하지 못하게 그냥 반으로  꺾어버리고 책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싶다.



남이 좋다고 나도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그렇게나 많이 경험했으면서 누군가의 입에서 이 책 좋다는 말만 들리면 불치병 환자가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가짜 약, 임상 실험조차 안 한 약에 솔깃하는 것처럼 그 책을 찾아 읽는다. 이 책은 그런 식으로 만난 책인데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만나더라도 지금이 아니라야 했다. 내 허리는 이제 완전히 꺾여 다시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오는 목소리는 많았다.  반대로 잊히는 목소리 또한 많았다.  심지어 읽은 책인 줄도 모르고  또 읽는 일도 있었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게 무엇이든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 기르던 소도 고모의 장례식도 친척 형의 소개팅도 딸의 질문도 제대로 보고 듣는 사람, 그의 문장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게 다르다.  나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기지 못하겠다. 의미를 곱씹게 된다.

다시 공백의 시간이다.  고독한 일상을 살면서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그나마 다시 쓸 수 있게 될 것 같다. 쓴다는 것은, 결국 가장 내밀한 나와 만나는 일이다.  앞으로 이 공백의 시간이 얼마나 길지 알 수 없지만, 때때로 오늘을 생각할 것이다. 작가로 불리는 것에 부끄럽지 않을 때가 오긴 올까.  아무리 더뎌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언제 어디에서든 무언가를 쓰고 있을 테니,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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