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오토마타 <사진 1>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오토마타는 태엽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장치를 말하는 것인데요.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가끔 길거리 모퉁이나 광장에서 바퀴가 달린 수례에 인형들이 음악 소리에 맞춰 자동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이것이 오토마타라고 불리는 기계태엽장치입니다. 이 장치의 태엽을 감았다가 풀어놓으면 자동으로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물론 인형들이 정해진 패턴에 따라 흥겹게 춤을 춥니다. 현재의 기술 관점에서 보면 이 장치는 흥미롭긴 하지만, 그다지 놀랍거나 신기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이러한 기계장치가 처음 세상에 나왔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오토마타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을 텐데요. 중세 유럽에는 "터키인의 인형" <사진 2>이라 불리는 오토마타가 전 유럽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터번을 쓰고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을 한 인형과 체스판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장치는 인간과 체스를 두는 기계였는데요. 귀족이나 왕족과의 체스 경기에서 사람들을 이기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경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기계 장치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마치 인형이 체스를 두는 것처럼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저는 이 오토마타의 이야기가 최근 기술과 산업계에 뜨거운 화두인 생성형 AI의 확산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가져야 하는 가에 대한 단서를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I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은 앞서 이야기한 터키인의 인형의 사례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인간을 대체한 노동력과 이에 기반한 생산성에 대한 기대는 AI의 발전에 대한 욕망을 갖게 했을 것이고, 인간을 넘어서는 능력으로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AI의 등장과 발전에 대한 인문학적인 통찰보다는 산업적 관점에서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이 가까워지던 무렵, ChatGPT라 불리는 챗봇 방식의 AI 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며 최근의 AI 광풍이 시작되었습니다. 궁금해하는 내용을 문의하면 마치 사람이 해주는 것처럼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아줍니다. 나아가 ChatGPT는 문서를 작성해 주기도, 프로그램의 코드를 짜주기도, 그림을 그려주기도, 심지어 음악을 작곡해 주기도 하는 등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검색의 결과를 단순히 찾아주던 이전의 기술과 달리 검색의 결과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생성형'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이 기술에 놀라는 이유는 빠르다와 편리하다 보다는 창작 능력에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창작은 인간의 고유 역량이라 여겼던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생각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했다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생성형 AI의 결과물로 보면 확실히 생각의 산물로 보입니다. 마치 터키인의 인형의 체스 경기처럼 말이죠.
과연 AI는 창작, 즉 생성할 수 있는 것일까요? AI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요?
최첨단 AI 기술이 어떠한 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지금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AI 서비스의 이용 경험 측면에서 보면 좀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사람들이 이용하는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명령을 내리고 이를 AI가 사람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리는 명령이 정확할수록 원하는 결과치를 얻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기술적 용어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AI의 활용도를 높여 내가 하기 있는 일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사람들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역설적이게도 생성형이라는 수식어에 논리적 모순을 갖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AI는 수행하고 무엇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이 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리고 기계에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 방식의 관점에서 생성형 AI는 컴퓨터 작동의 기본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AI는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 증대를 위한 자동화의 최첨단의 모습이라 보아도 좋을 듯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성형 AI의 시대라는 표현은 기술 관점에 국한 시대 구분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산업 관점으로 지금의 시대를 디자인의 시대라고 구분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산업환경은 각 기업들이 갖던 기술 장벽을 허물었고 이는 공급자보다는 수요자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기능 수행의 품질을 넘어서는 다양하고 가변적인 개인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기업들만이 생존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리고 이 경쟁의 핵심에는 디자인 경쟁력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디자이너들에게 요구되는 스킬들도 변화해 왔는데요. 과거 디자이너의 손으로 하던 작업이 컴퓨터와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업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였고, 이제 인터넷만 연결되면 디자인이 완성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손을 잘 쓰는 방식에서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방식으로 그리고 명령을 잘 내리는 방식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디자인 작업 방식의 도입이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일까요? 미드져니 같은 생성형 AI 툴의 사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일까요?
디자인의 시대에 생성형 AI는 가장 효율적인 작업 도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업을 완성해 냅니다. 다시 말해 극도의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업이 생성형 AI의 기술을 언제 도입하느냐의 문제일 뿐 진정한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생성형 AI를 도입한다면 경쟁기업도 어려움 없이 도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 구도가 바뀌지 않는 것이죠. 진정한 디자인 경쟁력은 결국 가치 창출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치 창출의 시작은 디자이너의 생각에 있습니다. 즉 디자이너의 가치 창의적 생각 능력이 중요한 것이죠. 가치 창의적 생각이 뛰어난 디자이너가 최첨단의 생성형 AI를 활용할 때 최상의 생산성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최첨단 기술이 등장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져야 할 진정한 역량은 창의적 생각 능력입니다. 손이 아닌 머리와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이는 아마도 AI가 쉽게 카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진정한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 어떻게 잘 명령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명령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