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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시대

AI 시대의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서비스 디자인)

by Kevin Seo 서승교

디자인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초점을 두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디자인하면 시각적인 것들을 떠올리고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유형의 객체들을 더 나은 수준으로 올리는 일이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같은 기능을 구현하고 동일한 수준의 퍼퍼먼스를 내는 두 개의 제품이 있을 때 사람들은 좀 더 좋아 보이는(Good Looking) 제품을 구매하고 심지어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기도 합니다. 이는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계층이나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성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가 보다는 어떤 디자인인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상징은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 로고가 부착되어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구매 행태가 달라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기능 제품, 디자인 제품, 상징 제품의 순으로 디자인이 진화해 왔고 사람들의 가치 부여 또한 같은 방향으로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오고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흐름에서 다음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전히 시각적인 유형의 사물을 디자인하는 방식의 변화가 올까요? 아니면 아예 다른 방향일까요?


디자인의 대상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제품에서 경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좀 더 세밀하게 나누어 보면 기계에서 전자(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기술 패러다임의 발전에 따라 시각적 디자인의 대상도 더 많아지게 된 것이죠. 기계를 만들던 시절에는 화면 디자인이 없었고 제품에 프로세서 칩이 장착되면서부터 이를 제어하기 위한 화면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사람과 기계의 인터렉션, 즉 제품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도 시작된 것이죠. 인터넷의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기계와 기계, 사람과 사람의 연결성이 더 확장되었고 이는 디자인의 중심이 물리적 제품 중심에서 디지털 경험으로 넘어오게 만들었습니다. UX, UI 디자인은 전문 분야가 되었고 사람들의 제품 및 서비스의 새로운 선택기준으로 등장하였습니다. 다만 앞 단락에서의 사람들의 가치 부여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는 선호의 기준이 되고 있을 뿐 추가 지불의향과 연결시키기에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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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있는 음수대입니다. 단순히 레버를 눌러 물이 나오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이 적용되어 디스플레이로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취수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는 서비스 디자인이 적용된 것으로 보이네요.


이처럼 디자인 대상의 변화는 기술의 진화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던 인터넷 기반 기술은 데이터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과 데이터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였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인터렉션을 좀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완성형으로 만든 것이 결과물을 만들어 주는 생성형 AI의 출현입니다. 그리고 AI 기술의 등장은 당장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프로그램 코딩의 효율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프로그래밍의 시간을 현저하게 단축시켜 준 것이죠. 더 나아가 자연어 프로그래밍(프롬프팅)만으로도 훌륭하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프로그래머의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디자이너의 일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인데요. 당장은 디자이너들이 도구로써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누구나 전통적인 디자인 작업, 즉 시각적 표현 작업들을 교육이나 훈련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전문 디자이너의 일자리 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게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소비자 측면에서도 AI는 검색 결과를 불러오는 역할을 넘어서 사용자가 원하는 디지털 업무를 대신 수행해 주는 에이전트 역할 수행으로 확장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디지털 행위의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인데요. 여러분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각자가 원하는 디지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앱들을 설치해 두었을 것입니다. 별도의 원하는 작업 수행하기 위해 일일이 앱들을 구동시키는 번거로움을 AI가 대신해 준다면 여러분은 스마트폰에 그 많은 앱들을 설치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디자인 분야에 있어서는 앱 UI/UX 디자인의 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좀 더 생각을 확장해 본다면 모바일 기기의 제품 디자인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디자인의 대상이었던 유형의 시각적 대상들이 적어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점점 줄어들 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디자인은 무엇을 디자인해야 할까요?


디자인의 대상이 유형의 제품에서 무형의 경험으로 확장되고 정리된 것은 서비스 디자인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서비스 디자인의 등장은 전통적인 디자인 문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시각적 표현력을 향상시키 위한 교육과 수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험과 전문성이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죠. 경험과 전문성은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역할을 크게 합니다만 디자인의 참신성이나 유용성에 대한 부분을 보완할 방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디자인에서는 시각적 디자인의 경험 못지않게 사람들을 공감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구조를 만들고 흐름을 설계하는 역량들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기존의 디자인 문법, 디자인 교육에서는 다루지 않던 것들이죠. 직관과 감성보다는 논리와 설득이 중요하고, 서비스 디자인 결과물의 소비자 또한 하나의 공통 집단이 아닌 여러 이해관계자 집단들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사용자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분석해야 하고 이해집단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잘 파악해야 하죠. 이러한 작업을 오롯이 디자이너가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협업으로 완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도 디자이너화하는 포용이 필요하죠. 이러한 관점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서비스 디자인이 정립되기 이전에도 누군가에 의해 서비스는 디자인되었고 사람들은 서비스 가치를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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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스타벅스에 설치되어 있는 텀블러 세척기입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들이 텀블러를 이용하는 것을 주목하고 이들이 가진 잠재적 불편함을 줄여주려는 시도로 보이네요. 시각적으로 유려하진 않지만 사용자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네요.


정리하면 앞으로 AI의 발달로 예견되는 디바이스와 앱들의 변화 흐름 속에서 디자인의 대상은 점점 유형의 시각적인 것들에서 무형의 경험, 서비스로 옮겨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형의 경험, 서비스는 이해관계자, 사용자의 오감과 프로세스, 그리고 시간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합니다.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시대의 도래에 따라 디자인의 역량과 문법도 확장 발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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