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디자인의 대상은 서비스가 아닌 고객의 시간
질문 1 :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질문 2 : "서비스 디자인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시는 분이라면 "그렇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2000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도 서비스 디자인이 유입되기 시작하고 이제는 관련 회사들은 물론 대학에 전공까지 생겨났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비디자이너들은 여전히'그게 뭐지?'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디자인이란 유형의 눈에 보이는 제품을 더 보기 좋게 만드는 활동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형의 서비스를 디자인한다' 왠지 선뜻 와닿지 않는 개념인 것이죠. 그럼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디자이너와 비디자이너를 막론하고 어떻게 대답할까요? 굳이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모른다고 하더라도 디자인의 대상이 서비스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에 대한 구분을 위해서는 디자인의 다른 영역들을 정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먼저, 제품 디자인이란 말 그대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디자인의 개념과 같은 것인데요.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물건들을 사용자에게 보기 좋고 쓰기 좋게 고안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공간 디자인, 시각 디자인의 개념들도 제품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거나 실체가 명확한 것들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 활동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산업 발달이 3차, 4차 산업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직접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덩어리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디자인활동에 더해 4각의 디스플레이 화면에 갇히지만 레이어가 더해지는, 다시 말해 깊이가 더해지는 디자인의 영역이 더 각광받게 되었는데요. UX, UI 디자인이 이에 해당하는 분야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디지털 스크린이 없던 시절에도 제품에 사용자 경험이나 기호를 만드는 초기 형태의 UX, UI 디자인이 존재했었습니다만,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라 그 영역과 경계가 더 명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의 디자인 영역의 확장과 발전단계에서 보면 디자인의 대상은 최소한 볼 수 있거나 만져지는 것들을 대상으로 했었습니다.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이전까지의 물리적 유형적 디자인의 대상의 개념을 벗어나 무형의 서비스를 디자인한다고 하여 제품 디자인과는 차별성을 갖는데요.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흔히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듯 경험 디자인(UX)과 유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명확한 구분을 위해서는 서비스디자인의 대상인 서비스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은데요. 서비스는 사용자가 본인이 원하는 일의 완료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받는 모든 형태의 도움 혹은 지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이 도움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고 공급자는 사용자가 원하는 도움을 대가에 맞게 제공합니다. 이 도움에는 사람의 물리력이 포함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용자가 소유하지 않은 장비나 시설들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제품은 사용자가 소유함으로써 사용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서비스는 사용자가 필요한 장비나 사람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일의 완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를 용역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결국 유형이냐 무형이냐의 문제는 사용자 관점에서 소유냐 그렇지 않냐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죠.
사용자가 지불하는 교환가치의 대상이 소유냐 비소유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사용자는 그들이 원하는 활동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유형의 제품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일정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고 무형의 용역을 제공받더라도 시간은 반드시 투입되어야 합니다. 사용자의 시간 투입의 관점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죠. 제품 디자인의 경우 사용자의 시간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제품 사용 시간에 한정됩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TV를 시청한다면 TV 시청 시간이 이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반면 서비스 디자인의 경우는 제품을 사용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서비스를 마칠 때까지 이용되는 모든 시간의 합이 고려해야 하는 시간으로 정의됩니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 가서 키오스크라는 제품을 이용해서 주문할 경우, 키오스크 사용 시간은 물론 커피를 제공받고 마시고 커피숍의 문밖을 벗어날 때까지의 시간이 서비스 디자인의 시간입니다. 또한 사용자가 투자하는 시간은 반드시 사용자 경험이 수반되죠. 그래서 UX 디자인과의 혼동이 발생합니다만 현재 UX 디자인은 앞서 이야기한 제품 디자인에서의 제품과 인터렉션에 필요한 시간과 관련된 경험으로 범위가 좁혀져 있습니다. 반면 서비스 디자인 제품이 개입되지 않더라도 시설을 이용을 종료하는 시점까지의 사용자 경험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의 UX디자인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사용자의 시간 활용적인 측면으로 디자인을 분류해 본다면 유형의 디자인, 제품 디자인은 사용자의 단기적 이용 시간의 품질이 중요하고 무형의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은 제품 사용 시간을 포함해서 사용자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의 상대적 장시간의 품질이 중요한 디자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제품을 디자인하지만 디자인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사용자의 이용 시간 만족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서비스를 디자인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 역시 1회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겪는 제품 및 비제품 연계 시간의 합에 대한 만족도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단순히 보기 좋고 쓰기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이용 시간 만족도를 높이게 하는 일이 중요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보기 좋고 쓰기 좋게 하는 것은 이를 위한 노력인 것이죠. 사용자의 이용 시간 만족도 높을수록 제품의 경우 재구매, 서비스의 경우 재방문 혹은 재이용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순환고리를 만드는 핵심입니다.
<표 #1> 서비스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의 비교
정리하면, 디자인 활동을 물성의 관점에서 유형이나 무형이냐의 관점으로 이해하기보다 사용자의 이용 시간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이윤 추구 관점에서 더 나은 시각이며, 서비스가 어떤 것이든 사용자가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입하는 시간으로 환산하고 이의 만족도로 서비스 품질을 계측할 수 있습니다. 제품 디자인은 사용자의 시간 중 감탄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Moment)에 집중하지만, 서비스 디자인은 서비스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지속되는 감동의 연속된 시간(Momentum)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일부 서비스 디자이너들은 총 시간 개념보다는 전체 이용시간 중 소위 터치 포인트에서의 이용 시간에 포커스 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이는 Moment에 집중하는 제품 디자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터치포인트를 포함해 서비스 이용 총시간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자의 서비스 이용시간을 설계하고 고안하는 활동이 서비스 디자인입니다. 따라서 서비스 디자인의 대상은 무형인 사용자의 시간인 것입니다.
<사진 #1>한 재래시장에 한 켠에 설치되어 있는 설치물과 시장지도입니다. 이 시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전체 시간 만족도에 이 설치물과 지도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할까요? 과연 이 지도를 참고해서 원하는 상점을 찾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이것도 서비스 디자인의 일부라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