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에 대한 오해
"혁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신기술", "IT", "디지털 기기" 등과 관련된 제품이나 관련 회사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재무적 성공"이라는 혁신의 성과와 연결이 됩니다. 즉, "디지털, IT 기술을 이용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사람들이 정의하는 혁신의 의미에 녹아들어 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번엔 다음의 회사들에 대해 여러분이 혁신 기업인지 아닌지 한번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A그룹,
"구글", "메타", "테슬라", "아마존", "IBM",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혁신이 떠오르시나요?
이제 B그룹,
"삼성전자", "LG 전자", "SK 텔레콤", " 현대자동차", "네이버", "카카오", "쿠팡", "라인", "배달의 민족", "토스"
이번엔 어떠신가요?
마지막으로 C그룹,
"월마트", "넷플릭스", "존슨 앤 존슨", "코스트코", "스포티파이"
세 그룹의 공통점은 모두가 재무적 성공을 거둔 회사라는 점이고, 각 그룹별로 눈에 띄는 점은 A와 C 그룹은 미국 회사들이고, B 그룹은 한국 기업들이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마다 판단이 다르실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분들이 A 그룹에 "혁신"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데 이견이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B 그룹과 C 그룹은 어떨까요? "혁신"기업이라고 부르기에 주저함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그룹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혁신을 기준으로 그룹들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고객 관점에서 혁신의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제가 정의하는 고객 관점에서의 혁신은 "사람들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이용하던 방식들(제품, 서비스)이 월등히 큰 가치를 제공하는 새로운 방식들(제품, 서비스)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과거의 문제 해결 방식을 이용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객들의 선택이고, 두 번째는 대체불가능성이라는 점이죠. 즉, 혁신은 고객이 선택하는 것이며 일단 선택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기준으로 위의 3그룹을 나누어 본다면 A 그룹의 포함된 기업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큰 가치를 제공하여 이전의 문제를 해결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혁신을 이룬 것이죠. B 그룹의 경우는 고객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모든 사람들의 문제 해결방식을 바꾸지는 못하고, 단지 기존의 방식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혁신이라기보다는 향상된 방식을 제안하는 기업들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C 그룹의 경우는 A 그룹과 마찬가지로 고객들의 생활방식을 바꾼 혁신을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A 그룹과의 차이는 그 이후 지속적인 혁신의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점입니다. 하지만 A와 C 그룹에 속한 회사들의 제품과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그 분야에 있어서 첫 번째라는 인식을 각인시켰습니다. 즉, 사람들은 최초와 더불어 기업들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지도 "혁신" 타이틀을 붙이는 데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미인 것이죠. 또 한 가지 이 두 그룹의 공통점은 고객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거대한 마케팅 비용의 지불 없이 고객들이 먼저 알아보고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B 그룹에 속한 기업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혁신 기업인가를 주장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A, C 그룹에 속한 기업들은 전시회나 협회로부터 "혁신" 인증을 받지 않습니다.)
혁신은 행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하는 것,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이 혁신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기업의 행위들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이지만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들여서 고객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위의 단락에서 이야기한 고객 관점의 혁신 정의에는 혁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목표와 결과까지도 담고 있습니다. 혁신의 목표는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월등히 큰 가치이고 혁신의 결과는 문제해결방식의 변화와 고착입니다. 이것은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일하는 방식, 혁신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데요. 기존의 기술 기업들의 혁신하는 방식은 보통 다음과 같이 이뤄집니다.
<생산자 중심적 혁신 프로세스>
1. 혁신의 동인 : 기존의 사업으로 수익을 내던 기업이 시장 환경의 변화 (새로운 기술 혹은 경쟁자의 등장)와 이에 따른 수익의 감소 발생
2. 혁신의 자원 마련 : 그동안의 수익으로 신기술이나 비즈니스의 개발 및 구매
3. 사업 가설의 수립 : 보유한 기술과 사업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사업 모델의 구상
4.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 : 보유한 기술 및 자본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는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
5. 고객 설득 : 이 제품과 서비스가 왜 일상에 필요한 지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고객들에게 설득 (마케팅)
6. 성공과 실패의 의사 결정 : 고객이 선택해 주면 다음 세대 제품 개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 판정
전제 : 이 과정을 빠르게 많이 하다 보면 하나쯤은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나는 천재, 고객은 바보여서 쉽게 설득당할 것이라는 믿음.
내가 성공한 방식이 언제나 먹힐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이러한 생산자적, 공급자적 혁신 방식은 다음의 이유들로 인해 어김없이 실패하게 됩니다.
1.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 및 사업력의 수명이 짧아진다. (경쟁의 속도가 너무 빠름)
2. 고객들에겐 그 회사의 제품, 서비스 말고도 대안이 언제나 있다.
3. 기업이 믿는 것보다 기업은 고객에 대해서 잘 모른다. (고객은 늘 우리 편일 것이라는 착각)
결국, 기업이 혁신 가설을 수립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 사실은 고객의 행위나 니즈에 기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혁신이 실패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혁신 가설의 오류는 한 번 성공한 경험이 있는 기업들이나 임원 이상의 의사결정자들이 고객의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데이터나 숫자에 의존할 경우 나타나게 됩니다. 즉 알려진 환경에서 정답을 맞히는 데는 능숙하지만 미지의 환경에서 최고의 답을 찾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똑똑한 의사결정자들에 의해 혁신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 가설의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카카오톡의 UX/UI 개편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생산자 우위의 고객 전제와 혁신 가설 수립의 오류가 뻔히 보이는 결과였습니다."고객이 처음에 좀 불편하더라도 곧 익숙해지고 우리의 노력과 가치를 알아봐 줄 것이다." 말은 의사결정자의 태도가 고객 지향적인가 아니면 생산자 지향적인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표현입니다. 요즘의 고객들은 기업들보다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에 노출되어 있고 경험이 다양합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면 바로 대안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장 대안이 없다면 새로운 대안이 나오는 순간 바로 갈아탑니다. 이전보다 서비스 교체에 대한 비용과 노력이 들지 않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대안 선택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죠.
<사진 #1> 한 커피 매장에 설치되어 있는 주문 전용 키오스크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키오스크 상단에 키오스크 사용 순서가 그리고 주변엔 점주가 붙여놓은 포스트잇들인데요. 주문을 위한 키오스크는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했을까요?
그러면 이제 제대로 된 혁신을 하기 위한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혁신의 목표는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월등히 큰 가치의 달성" 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객의 문제에 대해 깊게 공감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단계인 것이죠.
<고객 중심적 혁신프로세스>
1. 혁신의 동인 : 지속적인 고객 가치 제공을 통한 성장
2. 혁신의 단서 수집 : 현장에서 고객의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 (진짜 니즈 발굴)
3.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 발상 : 니즈 충족시키는 열린 아이디어 발상
4. 고객 대상 제품 및 서비스 프로토타이핑(개방형 고객 테스트)
5.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 : 고객 니즈 충족 여부 지속 점검
6. 시장 출시 및 고객 참여 혁신의 지속 (혁신의 동인)
위에서 정의한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객 공감에 가장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혁신의 시작점 또한 "기업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고객이 어떤 니즈(문제)가 있는가?"입니다. 풀어야 할 고객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가 풀 수 있는 문제의 답을 내고 고객을 설득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기존의 방식이 이러했다면 이제 혁신은 고객의 니즈를 공감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고객 중심 혁신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인 고객 가치 창출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실패하는 혁신은 없습니다. 더 나은 혁신을 위한 과정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입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인맥이 좋고,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빠르게 내고, 성공에 대한 열정이 있고, 다양한 조직 경험이 많은 사람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최고의 답을 찾고, 고객과의 공감력이 가장 좋은 사람이 혁신 기업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치열한 기업 경쟁 속에서 혁신 리더는 고객의 가장 든든한 옹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혁신 리더의 가장 큰 역할입니다. 고객의 옹호자 입장에서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혁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혁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A 그룹의 기업들을 각자 떠올려 보세요. 자연스럽게 그 기업들의 혁신 리더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B 그룹과 C 그룹에 속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사진 #2> 서울 동작구청에 설치된 누구나 이용가능한 미끄럼틀의 모습입니다. 딱딱한 행정 업무와 민원처리로 업무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구청 청사에 미끄럼틀의 설치는 재미를 위해 방문할 수도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 같습니다.
+ 왜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가에 대한 자기 철학이 필요합니다.
++ 혁신이 성공적이지 못한다면 고객이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기업이, 그리고 기업의 리더가 고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