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그저 시간이 없고 좀 더 바쁘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크고 나는 나대로 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라는 두 글자가 주는 책임감과 희생의 무게를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임신 10개월의 기간은 할만 했다. 입덧으로 고생도 했고 몸도 점점 무거워지고 막달에 불면증, 골반과 허리통증에 시달렸지만 아이가 생기는데 이정도는! 싶어 견딜만했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는 달랐다. 이 두 과정은 나에게 상상 이상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허리로 진통을 겪었다. 보통 배가 수축하며 진통이 시작되는데 산모의 10% 정도가 출산 진통을 허리로 겪는다고 한다. 지옥의 진통이라는 불리는 허리진통은 진통의 아픔을 허리로 온전히 느끼지만 배가 수축되지 않아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자궁문이 매우 더디게 열린다. 허리 진통을 참다 못해 병원을 찾아가면 자궁문이 아직 1센티도 열리지 않았으니 돌아가라는 대답만 들었다. 그렇게 이틀을 버티다 결국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았다. 허리진통에 무통주사까지 놓으니 배의 수축을 느껴본적이 없는 나는 힘 주는법을 하나도 몰랐다. 결국 아기 머리가 자궁문에 끼는 상황까지 발생했고, 긴급히 간호사 한 분이 내 배에 올라타 배를 짓누르는 고통을 겪은 끝에 시준이가 힘들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내 몸에 있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듯 껍데기만 남은 몸과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고통에 잠을 이루지 못한 출산 첫날밤이 지금도 생생하다. 너무 아파 울다가 밤을 지새웠다. 나에게 출산은 기쁨과 감동보단 고통의 기억이 크다.
아이를 낳고 키운 첫 1년은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몸과 마음이 다시 건강해진 지금에 와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아들이 커가는 과정은 신기했고 중간중간 사랑스런 순간들도 많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감동과 기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육아를 하는 모든 과정이 나에겐 새롭고 벅차고 어려웠다. 내 일을 포기하며 선택한 길이라는 마음에 육아를 잘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컸다. 그런데 육아는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하루종일 우는 신생아 앞에서 쩔쩔매는 내 모습에 좌절하고 화가 났다. 당연한 것인데 그때는 우는 내 아이 마음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나 자신한테 속상했다. 출산 후 회복하지 못한 체력과 늘 부족했던 잠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육아는 힘들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체력도 마음도 그 어느것하나 챙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라는 두 글자가 주는 책임감과 희생의 무게가 크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처음 해보는 육아로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내 마음속엔 억울함과 화가 가득했다. 이 세상에 나만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 내가 사라진 느낌. 이제 나는 ‘이지현’이 아니라 ‘안시준’ 엄마로 평생 살아야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또 다른 나의 역할이 생겨난 것인데 몸과 마음이 지친 나머지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가득찼다. 그때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시간이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절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