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 내가 그린 나의 미래는 뚜렷하고 화려했다. 당당한 커리어 우먼으로 교육사업 분야에서 어엿한 학원 원장이 되는 꿈을 꾸며 영어도서관을 창업했다. 하루하루 벅찬 마음을 갖고 지도했다. 아이들과의 수업시간이 즐거웠고 공부방이 자리잡는 과정이 그저 신났다. 오랫동안 꿈꾸던 나만의 공부방을 오픈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열정을 쏟아 운영하며 그동안 다른 학원과 영어도서관에서 선생님, 부원장으로 일하며 배웠던 모든 노하우와 스킬을 전부 쏟아부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결과, 나는 1년만에 21명의 재원생을 모집하고 대기까지 받게 되었다. 나름 성공했고 주변에 입소문이 나면서 학부모 사이에 2단지 영어독서 공부방이 유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얘기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원 확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던 무렵 남편은 2세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나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 나는 스물일곱, 스물여덟이라는 요즘 시대로 치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2세에 대한 이야기는 결혼전에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한 가족의 구성원에는 나와 남편 둘 뿐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가족’을 떠오르면 나, 남편 그리고 아이가 그려진다고 어느날 저녁을 먹으며 조심스레 고백했다. 나는 그 당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우리 둘은 왜 연애시절 단 한번도 의논한 적이 없었을까. 이렇게 중대한 가치관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덜컥 결혼한 내가 한심해보였고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지금 이 일을 못하면 불행할 것 같다고 2세의 계획을 미루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었고 아이는 막연히 갖고 싶은데 두려운 존재였다. 계획 임신을 생각하는 모든 예비 엄마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한번쯤 해봤으리라. 임신과 육아라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모두 오랜시간 고민을 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해봐야 아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도 당연한 것이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금껏 내가 해오던 선택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었다. 물릴수도 되돌아갈수도 없다. 주변에선 아이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들은건 많아 머리로는 아는데 직접 경험하질 않았으니 막연히 그렇게나 다를까 싶었다. 그렇게나 힘들까 싶었다. 게다가 시댁과 친정 어르들은 결혼한 지 4년동안 신혼생활을 즐기는 우리가 답답하셨는지 아이에 대한 기대를 은근 내비쳤다. 나는 주변의 시선과 압박에 자유롭지 못했다. 아이를 갖는 시기도 고민이었다. 더 늦게 아이를 낳으면? 그땐 내 공부방이 더 자리 잡을텐데? 고민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니 나는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난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어이없게도 운명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일단 계획을 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내 삶의 가장 중대한 결정을 결국 운명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우주의 결정에 따를 것을 왜 머리 터지게 고민했나 싶다. 무계획 같은 계획 임신을 진행한지 5개월이 지날 무렵..그런 철없는 나에게 아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