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나 May 07. 2024

책으로 낭만을 만드는 도시, 바르셀로나

 - 책을 축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 조르디의 날' -

스페인은 축제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가 끝나고 부활을 맞이하고 나면, 그 기쁨과 환희를 누리는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시작된다. 남부 안달루시아 세비야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화려한 4월 축제, 페리아 데 아브릴(Feria de abril)이 대표적이다. 행사 기간에 세비야의 시민들은 전통의상을 멋지게 차려입고 도로를 활보하며 먹고 마시고 즐긴다.


한편 책이 주인공인 축제도 있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성 조르디의 날’이다. 이 축제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성 조르디*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스페인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로,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거의 80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이들 입장에선 이교도였던 이슬람의 침략을 받았다. 현재 스페인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했던 이슬람 왕국을, 가톨릭 왕국이었던 스페인이 약 8세기에 걸쳐 조금씩 몰아내고 1492년 드디어 다시 이 땅을 가톨릭의 땅으로 되찾는 ‘국토회복운동’, 즉 ‘레콩키스타’를 완성하였다. 이후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가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지는 종교분열 속에도 스페인은 끝까지 가톨릭을 수호하였다.


* 한국 가톨릭 표기: 제오르지오


덕분에 스페인의 대부분 공휴일은 가톨릭 축일에서 비롯되며 도시마다 각각 가톨릭의 수호성인이 정해져 있다. 이 중 성 조르디는 스페인 제2도시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이다. 조르디 성인은 15세기부터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이로 전설에 의하면, 용의 희생 제물이 될 뻔한 공주를 구해준 기사로 알려져 있다. 조르디 성인이 용을 죽이자,  그 피가 흐른 자리에 붉은 장미꽃이 피어났는데 이 장미를 공주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르셀로나에서 성 조르디를 기리는 축일이 4월 23일, 즉 세계 책의 날과 같은 날짜이다. 이에 1888년에 태어나 1964년에 작고한 스페인의 시인 비센떼 끌라벨(Vicente Clavel)은 바르셀로나 도서 정책 관할 당국에 매년 4월 23일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연인에게 책과 장미를 선물하는 축제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하는 책과, 조르디 성인의 축일을 축하하는 장미를 선물하자는 의미이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이제는 명실상부 바르셀로나의 가장 로맨틱하고도 대표적인 축제가 되었다.


따라서 매년 세계 책의 날이자 성 조르디의 날인 4월 23일이 되면 바르셀로나의 중심 거리인 람블라스 길에는 장미와 책을 파는 수많은 가판대가 들어서며 그 사이로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이 한 손에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붉은 장미꽃을 들고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이런 책과 장미의 축제가 열린다는 건 무척 의미가 있다.  바로 세계 책의 날이 4월 23일로 정해진 이유 중 하나가 스페인의 대문호이자 명작 《돈 키호테》의 저자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가 사망한 날짜이기 때문이다. 이날이 다가오면 서점, 출판사와 더불어 꽃집들도 모두 분주해진다. 한해 중 가장 많은 책과 장미꽃이 팔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또 책을 평소에 잘 읽지 않았더라도 시민 누구나 행복하게 책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바로 성 조르디의 날이다. 이런 축제 덕분일까. 스페인의 출판계는 요즘 ‘황금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기를 맞이하는 중이다.


아직 한국에서 열리는 도서 축제는 주로 ‘책’만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일반적인 형태로, 연계되는 부대 행사 역시 주로 책에 한정된 주제로 진행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그마저도 대표적인 도서 축제라고 하면 어떤 게 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의 성 조르디의 날은 이제 스페인의 가장 로맨틱한 봄축제로 자리 잡았다. 도심의 아름다운 가우디의 건물은 빨간 장미로 단장을 한 채, 바르셀로나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그 거리의 풍경에 취해 관광객들의 손에도 어느덧 책 한 권이 들려져 있다. 책을 매개로 한 이런 매력적인 축제를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국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런 축제를 즐길 수 있을지 상상을 해 보는 책의 날이다.


조르디 성인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한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이 건물은 4월이 되면 붉은 장미로 외관을 단장한다. (C)이루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24년 4월 기고한 글로, 관련 저작권은 기관에 귀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읽기 좋은 계절, 스페인의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