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20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아이 아오야마는 늘 자기만의 주제로 실험을 하거나 공부를 하며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갑자기 펭귄이 나타나고 아오야마는 그와 관련한 실험을 계획하며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된다. 여름 방학 내내 펭귄을 찾기로 한 아오야마는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가 펭귄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의문의 구체를 산속에서 발견한다. 친구들과의 연구로 발견 사실을 숨기기로 하지만 일이 커지고 어른 과학자들이 마을로 모여든다. 아오야마는 구체의 비밀과 펭귄의 존재를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펭귄 하이웨이>는 아이들의 거대한 세계가 배경이 된다. 자칫 '이게 무슨 얘기지?' '이게 뭐 하자는 소리지?'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지만, 당연하다. 이것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이자 아이들의 눈으로 그려진 그들만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펭귄 하이웨이>를 스토리에 입각해 정리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세상은 그렇게 체계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동심'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 칠 수도 없다.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심각하고 그들 나름대로 중요한 그들만의 정서가 있으니까.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어른 관객들은 그저 귀여움이나 엉뚱함 정도에 비중을 두는 게 보통이다. 펭귄의 모습이 귀엽고 그를 통해 심각해지는 아이들의 궁서체 정서가 엉뚱하다. 곧 죽어도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예요"라고 말하는 아오야마는 분명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르지만 그렇게 혼자 심각하고 혼자 논리적이고 혼자 몰입하는 모습이 별 수 없이 천상 애다. 순진무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지만 그래 봐야 밤이 되면 꾸벅꾸벅 졸고 어른 여자의 큰 가슴에 호기심을 갖는, 그런 어린이다.
이들이 겪는 사건은 기본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그저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이야기일 뿐이다. 산속 깊은 곳에 '바다'라고 불리는 물로 가득한 구체가 있는가 하면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는 펭귄을 만들어낸다. 그와 동시에 펭귄을 잡아먹는 괴물도 만들어 낸다. 구체 안으로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펭귄의 도움이 있으면 탈출이 가능도 하다. 아이들이 보는 구체는 세상의 구멍으로 표현된다. 아마도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에서 그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동심이 바로 이 구멍이 아닐까 싶다.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는 아이와 어른을 이어주는 존재다. 아직 동심을 지니고 있는 어른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그리고 싶어 하는 어른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나 엉뚱함을 대변하는 펭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동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아오야마 역시 누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정확히는 동심을 통한 소통이다. 현실에서 겪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누나를 통해 겪고 그것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지만, 역시 그것으로 인해 '소년스러움'을 지키게 된다. 치과 누나가 아오야마를 '소년'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 감성을 잃지 않고 성장하라는, 세상에 나오더라도 동심이라는 구멍을 찾아 펭귄과 함께 하라는 당부와도 같은 것이다.
아오야마는 역설적인 존재다.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아이들만의 세상에 몰입한다. 아이들과의 유대 관계, 애정 관계, 우정, 아이와 어른의 연결 고리 등 아이들의 시각이나 감성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충실히 빠져든다. 전형적인 아이이기 때문에 어른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어른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감성을 궁서체로 대변할 수 있는 거다. 그가 하는 엉뚱한 실험이나 연구, 노특 필기 등은 뛰어난 어린이라는 느낌보다는 과거 누구나 겪었을 법한 그 시절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아이 같은 집착이나 몰입의 모습이다.
<펭귄 하이웨이>는 아이 같지 않은 애어른 캐릭터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바꿔 말하면 아이 같은 어른이 재미있어하기를 바란다는 것과 같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게 말이 되나?'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의 눈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의 동심을 깨우기를 바란다. 원래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진 그 동심이 콜라캔에서 펭귄이 나오듯, 세상의 구멍으로 비집고 나오듯,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밖으로 표현되기를 바라는 거다.
영화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이 영화가 재미있냐 없냐라는 이분법으로 얘기를 할 때는 선뜻 '재미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나 캐릭터의 설정 등에는 동의가 되지만 이야기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나 역시도 아직은 동심을 자유자재로 꺼내지 못하는 그저 그런 '어른'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