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21
도시락 배달을 하던 티엔커(펑위옌)는 장애인 수영 선수 샤오펑(천옌시)의 동생 양양(진의함)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양양은 수영선수인 언니 뒷바라지를 하느라 매일이 바쁘고 티엔커는 그런 양양의 주변을 맴돌지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두 사람 모두 정상인과 청각장애인의 사랑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섣불리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양양을 그리워하던 티엔커는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수화와 메신저로 자신의 마음을 적극 표현한다. 결국 티엔커는 부모님에게 양양을 소개하기로 하고 그날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된다.
<청설>은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에 약간의 반전을 심어놓았다. 하지만 그 반전이란 게 대단한 게 아니어서 영화가 시작되고 조금 지나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짐작할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가 아니기에 반전 자체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반전이 밝혀지는 과정에 감동이 있다. '반전이 어떻게 밝혀질 것인가'로 흥미를 끌지만 그것 자체보다 과정이 주는 재미를 잘 전달한다. 간혹 반전을 예상하지 못한 관객이라면 반전의 재미까지 느낄 수도 있지만 <식스센스> 급 반전은 아니니 큰 기대를 하지 않길.
하지만 <청설>은 기본적으로 착하고 순한 로맨스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코드가 많다. 2009년 영화답게 정서적으로는 우리나라의 90년대나 2000년대 초 TV 드라마에 닿아 있다. 첫눈에 반한 남녀가 있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고민하고, 장애보다는 사랑이 먼저라고 생각해 다가서지만 서로를 오해하고 밀어냈다가 어떤 상황을 통해 오해를 풀고 사랑을 확인한다는 식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서로의 어려움과 아픔, 오해와 갈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녹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청설>은 그 감성 자체가 올드하다. 올드한 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것이 로맨스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니까.
영화는 청각장애인들의 사랑이라는 큰 설정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그 외에는 자매의 이야기, 유쾌한 엄마 아빠의 이야기, 장애인올림픽 이야기 등 곁다리로 붙는다. 큰 줄기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사실 일반적인 서사구조에서 쓸 수 있는 흔한 장치들이고 사랑 이야기에 쉽게 붙일 수 있는 관계와 캐릭터들이다. 덕분에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눈물을 짓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 정도가 세련되진 않았지만 없으면 섭섭한 수준의 것들이다. 이 중 자매의 이야기는 영화의 큰 설정을 잘 뒷받침하는 효과가 있고, 영화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의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연결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청설>의 과장된 상황은 지고지순한 캐릭터들 덕분에 상쇄되는 느낌이 있다. 몇 가지 에피소드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이나 일반인들이 견지하지 못한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사소한 행동을 통해 배려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영화가 장애인의 사랑을 미화하거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재고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에서 장애라는 코드를 적절한 사용해 우리가 놓쳤던 부분이 없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사랑은 사랑 자체로 가치가 있다. 첫눈에 반한다는 설정을 두고 있지만 두 사람은 그 사랑을 향해 직진한다. 청각장애인을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조건은 달지 않는다. 그저 사랑한다는 마음 앞에서 그런 조건들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의 숭고한 면만 강조하진 않는다. 청각장애인을 사랑하고 함께 하고 결혼까지 하는 과정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실제하는 난관도 그려진다. "사랑이면 다 괜찮아"라는 틴에이저식의 관점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널 놓칠 수 없다"는 보다 성숙된 자세다.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말이라는 것은 사랑의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은 직접 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말이라는 것이 반드시 입에서 나오는 소리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표현되는 수화이거나 종이에 적힌 글이어도 상관없다. 그것이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원래 사랑이란 워낙 복잡한 것이어서 표현하지 않아 생긴 오해로 상처를 주거나 진실을 모른 채 떠나가기도 하는 법이니까.
영화를 보면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언니인 샤오펑으로 나온 천옌시에 더 눈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주인공. 대만 배우라 익숙하진 않지만 대만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맹활약하며 첫사랑 이미지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배우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