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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맘 Jul 20. 2020

생리는 죄가 없다.

무섭고 막막했던 첫 생리의 기억.

"어..언니.. 언니 다리 사이에서 피가 나.."

"뭐라구"

아니나 다를까, 동생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가벗고 있던 내 허벅지 사이에서 벌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날은 나보다 두살, 네살 어린 동생들과 별로 친하지 않던 내가 할머니의 듣기 싫은 잔소리 때문에 억지로

목욕탕에 밀려오다시피 한 날이라, 신경질이 무척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피라니, 저게 무슨 헛것을 보았나.

아니다. 동생은 헛것을 본게 아니었다.




나는 초경을 당시 국민학교6학년 여름쯤 시작했다. 내 또래들 중에는 국민학교6학년 말이나, 중학교1학년쯤

초경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다.

초경을 했던 친구들은 엄마가 그냥 해줬어 대충 얘기해주는 게 전부였고, 말 없는 내성적인 아이였던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 '넌 엄마 없어?'라고 되돌아올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초경이란 차라리 '남자로 태어날걸'

하는 후회와 자책의 다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그 초경이란 녀석이 내 현실로 다가오니 그저 무섭고 막막하기만 했다.

엄마가 도와주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빠는 있으니, 아빠한테 말을 해볼까도 생각은 해봤지만,

고작 일주일에 한번 보며 대화도 거의 없는 아빠도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께 말씀드려볼까?

하지만, 나는 끝내 할머니께는 말씀드릴 수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야 많았겠지만,

'그냥 무서워서' 라고밖에는 딱히 납득할 만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 팬티에 아주 투텁게 까는 것이었다.

초경이라서 그랬는지 양이 적어서 그 방법은 아주 쓸만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완전범죄를 저지른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번째 달, 그 목욕탕에서 갑자기 생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징후도 없이 갑자기 시작된 생리는 어린 나에게 지독한 수치심을 넘어, 이상한 분노심을 가져다 주었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했던 것이 들통나는 순간이라서 그랬을까.

계속해서 나에게 피가 나는데 괜찮냐고 묻는 막내동생을 향해 '그만말해!'라며 뺨을 때리고 말았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주변 분들이 가까이 오셔서 나와 내 동생을 달래 주시고, 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파악을 해주셔서, 감사하게도 생리대 한개를 얻어쓰고 우리는 집에 오게 되었지만,

가슴까지 차오르는 어떤 이상한 분노심같은 것은 가라앉지가 않아서, 나는 동생에게 사과를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생리는 계속 되었고, 목욕탕에서 얻은 생리대는 한개 뿐이었기에 나는 또다시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법 양이 많아서 팬티에 흔적이 남고 말았다.

결국 내 완전범죄는 팬티에 남은 흔적을 할머니에게 들킴으로써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년아, 멘스를 하면 한다고 말을 해야지, 언제부터 했냐?"

"지난달부터.."

"지랄한다. 별걸 다하네 아주 그냥, 지 애미를 닮았나 일찍도 한다"

할머니 말투가 하루이틀 뾰족한 것도 아닌데, '지 애미를 닮아서'란 말이 나오니 나는 내가 여자인것도,

생리를 하는것도 모두가 다 얼굴도 기억 안나는 엄마 탓인 것만 같았고 생리를 하는 나도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런 쓸데없는 생리도 안하고 좋았을텐데. 다시 이유모를 분노심이 차올랐다.


그 후로 내 '멘스'사실은 고모들에게도 알려졌고, 고모들과 할머니는 아직 중학생도 안된년이 벌써부터 멘스를 한다며 지애미를 닮아서 그런거 아니겠냐며 몇날 며칠을 전화통을 붙잡고 어릴적 헤어진 엄마흉을 보았다.



그렇게 실컷 흉을 보고 난 할머니는 어느날  내앞에 중형, 대형 사이즈의 생리대를 내밀며 말씀하셨다

"이년아..처음에 거시기에서 이상한게 나왔으면 할미한테 젤 처음 말을 했어야지.. 니가 세상천지

할미말고 그런거 말할 사람이 누가 있어..응? 이거 헐줄은 알어?"

"응..."

"애껴써, 허투루 쓰지 말구. 이그...사내놈으로 나왔으면 이런것도 안하고 얼마나 좋아 쯧"

"......"



"그래도 다컸네.."


다컸다 소리를 하시며 내 양볼을 그 거친 손으로 한참을 쓰담으시며 나를 애닳게 쳐다보시던 그때 그

할머니의 눈빛은 분명 내가 멘스한다는 사실을 처음 들켰던 날 나를 쳐다보시던 날의 그것과 달랐다.

어린 나였어도 그런 눈빛은 구분할 줄 알았던 걸까.

목욕탕에서부터 이유없이 차오르던 분노심이 한번에 녹아내리면서 나는 할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말도 없이 꾸역꾸역 끄억끄억.

그런 나를 할머니도 아무말씀 없이 등만 하염없이 쓰다듬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생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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