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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맘 Aug 06. 2020

맞을짓을 하니까 때리지

할머니는 어린 두 동생들을 이렇게 때리면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의 매일 매질을 하셨다. 80년대엔 가정이나 학교에서 훈육차원으로 체벌이 공공연했다 했어도 어린 내 눈에 비춰진 할머니의 매질은 그저 공포 그 자체였다. 첫 손주라는 이유로 나는 그 매질에서 예외였는데 처음엔 동생들이 맞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같이 맞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매질의 강도가 더 세지고 나도 맞지 않는게 당연시 되면서 그런 가슴아픔은 곧 잊혀졌다.




매질의 이유는 다양했다.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와서,  사촌동생의 분유를 먹어서, 슈퍼에서 과자를 훔쳐서, 친구의 장난감을 가져와서, 사촌오빠의 얼굴을 할퀴어서..

할머니는 모든 이유를 통틀어 그냥 '맞을짓'이라고 하셨고 맞을짓을 했으니 맞아야한다고만 하셨다.

어느날은 고무호스로, 어느날은 부지깽이로, 또 어느날은 식칼로, 손에 잡히는게 없으면 그냥 머리채를 잡고 벽에 아이들 머리를 찧어대시면서 그 어린아이들을 때리고 또 때리셨다.




어른들은  그것이 할머니의 방식이라고 했다. 고모들과 삼촌은 자기들도 할머니에게 그렇게 맞고 자랐다면서, 그래도 노인네가 때려봤자 애들을 얼마나 때리겠냐는 식이였다. 그리고 맞을짓을 하면 맞아야지 라는 말로 할머니를 두둔했다.


아빠만이 동생들 몸에 난 상처나 멍을 보고 할머니에게 제발 아이들좀 때리지 말라고 말씀드리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역정을 내셨다. "맞을짓을 하니까 맞지! 내가 괜히 때려!" 그러면 두분은 항상 싸움을 하셨고 아빠는 그런 싸움이 있고나면 며칠동안 연락을 하지 않으시곤 했다.




할머니의 매질은 동생들이 자라면서 덩치가 커지고 할머니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서서히 멈췄다. 동생들은 둘이서만 꼭 붙어다녔고 어른들 모르게 뒤로 조금씩 엇나가고 있던 나와는 달리 곧잘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의 폭력과 어른들의 무관심의 잔상이 계속 남아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동생은 할머니가 밉지도 않은지 병수발이라니. 동생이 더 낯설었고 할머니도 미웠다.




"할머니가 우리 때릴때 많이 무섭고 싫었지. 매일 때리는데 어떻게 안무서워. 근데 그때 언니는 뭐했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지. 아니지. 우리가 맞고있을때 공부했지 언니는. 우리한테는 언니밖에 없었는데 언니는 아.무.것.도 안했잖아. 그래서 언니가 할머니보다 더 싫었어"

나중에 성인이 되어 서로의 속마음을 얘기할수 있게되었을때 동생이 내게 한말이다.




동생의 말은 사실이다. 그 중에 제일 나빴던 건 나다.

식구들 중 할머니의 매질을 제대로 목격한 건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할머니가 말해줘서 알았거나 아이들의 멍을 통해 알았을 뿐, 실제로 할머니가 아이들을 어떻게 때리는지 아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할머니가 주시는 애정을 지키기 위해 더욱더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만 쓰고 있었다.

동생들이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나는 울고 있던 그 아이들을 외면하기만 했다.



나는 그때 어떻게 해야 했던 것일까. 늦은 후회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걸 알지만 아직도 이렇게 가슴 아플줄 알았다면 할머니에게 제발 동생들 때리지 말라고 매달려 보기라도 할것을.

맞고 있던 아이들을 외면했던 댓가는 참으로 혹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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