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졌던 그릇들을 집에 들고 왔다.
처음 킨츠키 수업을 등록할 때는 한주에 하나씩은 균열을 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각난 도자기를 붙이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번 부서진 건 다시 이전의 모습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열을 메우는 법은 다음과 같다.
<균열 메꾸기 수술>
깨진 조각을 모으고, 알콜성 약품으로 깨끗이 닦는다. 그리고는 옻을 조각난 각 면에 바른다. 그리고 나면 찹쌀가루를 반죽해서 옻칠과 섞은 후 각 면에 얇게 펴 바르고 조각의 단차가 나지 않게 꼭 붙여준다.
그리고 나면 시간이 걸린다.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온도에서는 하루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얼마만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온도는 따스하고 습도는 촉촉해야 한다.
오븐에 넣어서 열 경화를 시키면 조금 더 빨리 굳을 수 있지만 예민한 옻이 부풀어 오르거나, 갈라지기 쉽다. 섬세한 정성, 균형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2년 전 집에서 나왔다. 부모님의 권유였다. 부모님의 사랑이었을 수도 자식에게 허망함 보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지금도 누군가에게 떠남을 권유받는 것은 그다지도 기쁘지 않은 일이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혼자 사는 일은 때때로 따스하고 널널했고, 허리는 꽉 조여야 했고, 많이 서툴렀다. 정적과 공백을 메우는 법을 몰라서 나를 잘 돌보지 못했다. 같은 계절을 두 번은 반복하고 나서야 내가 나를 조각났었다는 것을 인정했을지도 모르겠다.
킨츠키 수업은 꽤나 고가의 수업이었다. 사실 가당치도 않다. 왜 갑자기 조각난 것들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을까라고 꼭 붙인 조각들이 대략 원래 모습을 띄고 나서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학원 졸업 후 뭐라도 나에게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정리되지 않은 일들을 두고 여행을 가려니 마음이 떠나지를 않아서 배우고 싶었던 수업이라도 들어보자라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금속 공예나 도자기가 아니라 왜 킨츠키였을까?
한 달 후 흔적은 가득하지만 원래의 모양으로 붙은 그릇을 들고 집에 돌아오니 조각났던 기억들이 생각났다.
나는 균열을 메꾸고 싶었구나 조각난 걸 붙이는 그 과정을 경험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새로 만드는 것들이 설렐 텐데 분명 삶의 모든 균열을 마주할 때마다 새로 만들 수는 없다.
조각난 그릇을 붙이는 일도 이렇게 쉽지가 않은데 조각난 마음을 조각한 관계를 붙이는 일은 더욱 간단할 리가 없다. 특히나 흔적 없이 과거의 그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다시 붙은 그릇은 자신이 깨졌다는 것을 인정한 존재이다. 나는 부서졌고, 그 균열과 파괴를 딛고 다시 자신을 깎고, 데우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태어난 것이다. 나는 그렇게 균열을 인정하고 메꾸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내가 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금 조각난 상태라면 당신은 그냥 부서졌을 뿐이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존재가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부서졌을 뿐이다. 그리고 만약 다시 그릇이 되고 싶다면 붙이면 된다. 아마도 이전의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균열과 상처와 흔적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까지 당신이다. 그 고통까지 존재이다.
수리한 깨진 그릇들은 그나마의 수술도 완벽하지가 않다. 의사가 첫 수술을 했다. 이리저리 은이 삐져나가고 선은 거칠다. 의사는 수술을 많이 하게 될까?
상처는 삐죽삐죽하다. 메워진 틈이 나무의 가지처럼 보인다. … 그 이음새의 존재와 역할이 생명이 될까?
그릇을 들고 오는 길에 다시 "쨍그랑"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