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이곳의 북부부터 남부까지 다녀보자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듯이, 사실 나는 입사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사이판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괌 옆에 있는 섬이고 미국령에 속한다는 것은 파견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올 때쯤이었던 것 같다. 울릉도보다 작은 이 섬은 러프하게 둘러보는 데에 하루~이틀이면 충분하다. 이틀에 걸쳐 사이판 북부와 남부를 둘러보고 왔고 덕분에 천혜의 자연을 듬뿍 눈에 담고 왔다. 뒤로 갈수록 그 풍경이 그 풍경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가슴이 답답할 때 떠올릴 화면 보호기 역할을 할 것이니 하나하나 열심히 보자.
사이판의 최북단인 만세절벽의 이름은 태평양 전쟁이 그 기원이다. 전쟁 도중 일본군과 민간인들이 ‘천황 폐하 만세(天皇陛下、万歳 덴노헤이카 반자이)’, ‘대일본 제국 만세(大日本帝国、万歳 다이닛폰데이코쿠 반자이)’를 외치며 자살한 것에서 이름이 만세 절벽으로 유래했다. 비슷한 기원을 가진 절벽이 하나 더 있는데 그곳은 이름이 좀 더 직관적으로 Suicide cliff(자살절벽)이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가미가제 감성으로 느껴지기만 했다. 위령비도 여럿 있어 이렇게 말하기 참 어색하지만 절경을 이루고 있고 사진 찍기에도 좋아서 방문해봄직한 곳이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기 때문에 챙 넓은 모자를 쓸 때 꼭 조심해야 할 듯하다.
훗날 스노클링을 하러 오게 되는 이 곳은 아름다운 푸른빛을 담은 동굴이다. 물을 보려면 117개인가.. 많기도 많지만 엄청나게 험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구경만 하러 갔을 땐 그저 덥고 길이 험해 그로토의 매력을 다 알지 못하고 왔다. 그냥 내려가서 사진만 찍고 오기엔 힘들기만 하고 아쉬운 곳이다. 꼭 투어를 통해 수영/스노클링을 하러 다녀오길 추천한다. 구명조끼를 해도 발이 안 닿는 물은 무서운 국가대표 겁쟁이도 여기서 본 물 색이 안 잊힌다.
대충대충 사진을 찍어도 '절경이고요, 장관이네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를 시전 할 수 있는 관광지 등장이다. 그늘이 약간 있어서 조금 관람하기 수월했고 새를 무서워하지만 새 섬은 사진상 뒤에 보이는 석회암 섬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파도소리, 바다 색, 섬이 이루는 조화는 그동안 도시 여행만 지독하게 고집하던 내 여행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사람 사는 구경을 더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언제 나가도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품는다. 덧붙여 기회 앞에 '마지막'이라는 말을 붙였다가 지웠다. 아직 젊고 한 번뿐인 내 인생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사이판의 대부분의 관광지는 사람이 적고, 크게 붐비지 않아 아주 평화롭고 느린 여행지이다. 이 곳에서 제일 바쁜 건 파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마이크로 비치는 이너 피스를 찾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마나가하섬을 마주 보고 있고, 걸어 나가면 가라판 시내에, 하얀 모래와 얕은 수심 푸른 물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곳인데 무척 한적한 편이다. 찾아보니 대부분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기 위해서 마나가하 섬으로 가서 이쪽으로 유입되는 인파가 적은 듯하다. 수심도 얕고 파도도 잔잔하지만 이 곳의 평화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선 해수욕보다는 선베드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그게 어렵다면 돗자리라도. 정신 업이 지내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구경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는데 같이 간 친구도 뜬금없이 진로 얘기를 하는 게 우리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래더 비치 역시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사람에게 한 발짝 불친절한 만큼, 자연에게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곳들이 사이판에는 참 많다. 어쩌다가 외국인 전매특허 좌절 포즈로 찍힌 마지막 사진을 보면 세상 모든 푸른색이 다 담긴 바다를 볼 수 있다.
금단의 섬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포비든 아일랜드를 검색하면 게임 리뷰 외에 많은 트래킹/스노클링 후기를 볼 수 있다. 물론 길이 굉장히 험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입구에는 사망 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멘트가 다양한 나라 언어로 적혀있다. 트래킹을 마치고 나면 나타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많은 관광객들(특히 한국인)이 찾는 듯하다. 이 때는 쪼리 바람이었고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어서 전망대에서 섬만 구경하고 왔지만 나중에 일하며 친해진 동료가 자기는 트래킹을 좋아하니 시간이 괜찮다면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차도 있다고 했다. 네가 언니 해, 크리스틴..
탱크 비치는 마지막 일정이어서 많이 지치기도 했고 바다를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덜한 상태였다. 원래 코코넛 떡(!)도 팔고 좀 더 갖추어져 있다는데 태풍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다소 황량했다. 나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탱크 비치는 일출이 유명하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미국령인 것도 오기 직전에 비자를 발급받느라 알았다..) 온 외노자는 뒤늦게 검색을 하며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본다. 어느 부지런한 날 한 번쯤은 일출을 보러 갈 수 있기를.. 꼭...
마무리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코코넛이 새 부서에 서있는 나 같아서 찍어 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