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혹은 드디어 퇴사

이렇게 갑자기 싶기도 하고, 이제서야 싶기도 한

  

설레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2년 전 여름의 순간

언제부터인지 종잡을 수 없게 생각해왔던 퇴사를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 모든 게 눈에 밟혔다. 회사 건물, 선배들 얼굴, 내 자리까지.. 퇴사를 하는 데에는 많고 많은 이유가 있지만 트리거가 돼준 것은 조직의 변화였다. 그리고 이 표면적인 이유는 남들에게 퇴사를 설명하기 아주 쉽게 해주었다. 누구나 납득할만한 이유니까. 그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회사에서의 기억을 톱아낸다.

  신입사원 때에는 조직 문화가 못 견디게 싫었다. 사건들은 하나씩 가시가 되어 마음에 콕콕 박혔고 많이 주저하는 성격으로 변화하게 했다. 나는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일까? 사실 잘못 뽑힌 건 아닐까? 나는 채용 프로세스 덕에 운 좋게 한자리 꿰찼지만, 조건만 보고 한 소개팅 상대가 영 안 맞는데 무르긴 늦어버린 그런 상황 같은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한 해, 두 해가 갔다.

  조금 적응하고 업무를 돌아보니 연차에 비해 내가 할 줄 아는 일이 너무 없는 것 같았다. 마케팅에 소극적인 회사의 마케팅팀 직원은 쉽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또 그렇게 존재의 의미를 고민했다. 설마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은 몰랐는데 남의 자리와 나를 자꾸 비교하고, 조바심을 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도 참 힘든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퇴사 사유로 내 업무능력의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싶다는 이유를 댔을 때에도 다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라. 여기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을 아무도 못 한다는 것이 또 퇴사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슬금슬금 가시화된 사직을 두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을 때,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갑자기?'와 '드디어 하는구나'. 사실 두 번째가 훨씬 많았다. 입버릇처럼 때려치우고 싶다, 그만둘 거다, 하던 사람은 퇴사한다고 했을 때 임팩트가 적은 모양이다. 마냥 시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무섭고 걱정이 앞서는 때도 많다. 나 정말 잘한 건가? 하고 끝없이 되돌아볼 때 현 직장 선배의 조언이 도움이 많이 된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분명 후회되는 순간이 있을 거야.
그 회사가 내가 기대한 거보다 별로일 수 있어. 그래도 후회하지 말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과거를 미화하지 마. 목표와 도착점은 항상 멀리 있고,
 네 선택은 전부 과정이니까 과거의 결정을 부정할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