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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3. 2020

입사 300+1일의 소회

존나게 버텨본 후기


    301일. 디데이 어플에  2018.09.03을 입력했더니 나온 숫자다. 입사한 지 어언 1년 배치로는 10달쯤..이라고 뭉개어 표현한지도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아서 문득 정확한 숫자가 궁금해졌다. 현업 배치받은 지 300일을 채우고도 하루가 더 지났다. 집에 누워서 뒹굴다가 예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다 보니 이쯤 되면 회사생활의 소회를 한 번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한 번 의기소침해진 마음은 좀처럼 펴질 생각을 않았다. 2주간의 실습 동안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잔뜩 주눅 들고 그때는 고용 불안정이 더해져 있으니 퇴근길에 역에도 닿기 전에 펑펑 울 때도 많았다. 내 마음이 어찌 되었든 간에 합격을 하고 2달 정도 되는 이런저런 연수와 교육기간 동안은 잠시 이런 고민들을 잊고 지냈다. 1,000km가 훌쩍 넘는 주행거리가 그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두 달 만에 적막한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상황은 별반 달라져있지 않았다. 동기들은 신입사원이 눈치 보느라 하염없이 앉아있을까 봐 선배들이 서둘러 퇴근을 시켜줬다는데, 퇴근시간을 20분 정도 넘기고 인사를 했다가 시간만 때우고 가면 안 된다고 팀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타박을 들었다. 그때가 월요일에 입사했으니 목요일쯤 되었을까..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너무나 어려운 상대방과의 공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상대방이 나를 탐탁지 않아한다는 기분은 어지간한 정신의 근육과 배짱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람을 착 약해지게 만드는데, 상대방이 사회적으로 나보다 상급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 불안감은 계산할 수없이 증폭한다.

  지금까지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본 게임, 업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왜 좀 더 전공과 딱 맞는 계열사에 가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제가 취준 할 때 채용을 안 해서요..;) 그때마다 다소 기계처럼 한 대답은 '저는 직무를 보고 지원한 것이라 업종은 크게 상관이 없었어요'였다. 회사에서 하는 말 중 몇 안 되는 100% 진심 중 하나다. 참으로 어려운 구직시장에서 원하는 직무로 합격했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선례들이 있듯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막상 내 일이 되면 그렇지 않은 것이... 이런저런 슬럼프와 고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도 비슷했으나 그래도 꽤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분명 그랬는데, 계속되는 평가에 박한 말들과  한숨,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비언어적 표현과 앞서 말한 관계의 어려움이 얽히고설켜 자꾸 움츠러 만들었다. 보고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내가 뭔가 기획해서 보여주는 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조사해서 취합하기 수준의 업무 외에는 미루고 미루다가 파일을 켤 때도 숱하게 많았다. 그러니 열심히 안 하는 것 같다, 주도적이지 못하다 와 같은 부류의 피드백도 많이 들었고 요즘도 듣고 있는 중이다. 덧붙여 중간에 다른 일을 맡게 되면서 주객전도되어 객에 속이 다 할퀴어지기도 했고....

 301개의 단추를 잘못 채웠다는 생각이 든다. 존나 버티라고 해서 진짜 존나게 버텼는데, 그냥 시간만 300일가량 흘렀을 뿐 나아진 것 없이 더 엉망이가 된 것 같다. 통장에 조금 더 모인 잔고 빼고 전부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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