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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31. 2021

서늘한 여름밤,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완벽한 사랑에 대한 기대가 지금의 사랑의 균열을 내지 않도록

  


   완벽한 연애, 진정한 사랑에 대한 환상은 십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내 맘속에 있었다. 방향은 시도때도없이 바뀌었지만 연애라면, 사랑이라면 응당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끊임없이 만들어두고 나의 현실을 재단하기 바빴다. 몇 점 짜리 애인, 몇 점 짜리 데이트... . 촘촘한 취향을 가진 만큼 애정관계에 있어서도 뚜렷한 이상향이 있는게 당연한 것이겠으나 그렇게 재단하느라 내가 행복할 틈을 놓쳤다. 잘 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불안했다. 그런 시기를 거쳐서 사람에서 낙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때가 왔다. 모든 인연(특히 연애)는 유효기간이 있고 그런 불안한 지반 위에 내 마음을 오롯이 올리는건 위험하다는 것. 사실 정말로 내가 독립적이고 혼자여도 온전히 괜찮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더이상 실망하고, 실패감을 맛보기 싫어서 만든 방어기제였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을믿고싶은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던 나 에게,  '야 너도 할 수 있어'같은 치유의 메세지를 전한다. 마냥 나를 다 받아들여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행복해질거라는 구원 서사도 아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변화해야만 한다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가만히 지난 7년의 이야기와 함께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건강한 사랑이 아니구나, 이렇게도 지낼 수 있구나. 사랑에 대한 핑크빛 환상도, 현실은 애써 지운 무용담도 걷어낸 채 덤덤하게 자신과 동거인의 얘기를 전할뿐이다. 부족함 많은 너와 내가 꼭 맞는 요철을 가지고 있어 완벽한 하나가 될 순 없지만, 아픈 곳에 서로 연고를 발라주며 지낼 수는 있겠다는 사랑의 단상. 

책에서는 다른 사랑, 태초에 탄생과 동시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랑인 부모님과 나와의 사랑에 관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 거기서 맺은 사랑방식이 이후에 다른이들과의 사랑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니까. 소위 K-장녀였던 작가 역시 너무 당연하게도 언제나 완벽하게, 혼자서도 뭐든 척척 잘 하고자 했기 때문에 연애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의 모습 그대로를 서로 보여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되어 조금 더 안정적인 애정관계를 맺게 된다. 여기서 안정적이라는것은 두 명의 성향이 갑자기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게 아니라, 어딘가 모나고 기울어져있을지언정 그 상태를 디폴트값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온다.  최근까지도 상대방을 만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하는게 이상적인 연애인 줄 알았는데, 사실 나는 있는그대로의 나여도 괜찮아야 하는거구나. 실체 없는 이상을 좇다가 현재의 사랑에 균열을 내지 않도록, 무엇을 집중하고 받아들여야할 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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