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시선 아래
유년기를 강타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읽은 세대는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 몇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효' 제일 주의였던 유교초딩의 머릿속을 뒤흔들어놓은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나, 짧게 등장하지만 여자 어린이들의 여덕본능을 강타한 아르테미스 이야기가 그랬다. 그에 비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 이야기는 제법 슬픈 이야기이지만 수년 후 권혁수가 패러디한 짧은 클립영상(이건 그 유명한 만화책은 아니고 만화책의 인기를 힘입어 방영했던 TV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다.)이 더 화제가 됐던 것 같다. 나에겐 그정도 기억이었던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되살아 났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소피는 마님이 집을 비운 사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이 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다. '뒤돌아보지말라'는 금기를 어긴 오르페우스 때문에 다시 망자의 세계로 속절없이 끌려가는 에우리디케. 엘로이즈는 여기서 에우리디케가 뒤돌아보라고 말 했을수도 있다는 기존의 틀을 전복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망자의 세계로 가더라도, 에우리디케가 '뒤 돌아보라'고 했다면 선택은 에우리디케의 몫이 된다. 주체성을 옮겨가는 이 중요한 장면은 영화의 결말에 다달랐을 때 다시한 번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이별 장면을 통해 그려진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돌아와 이제는 정말로 현실로 돌아가야할 때, 문을 열고 나서는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는 돌아보라 말한다 (Retourne-toi ). 그 때에서야 내내 마리안느를 혼란하게 하던 초상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 경험에 입각해 마리아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작품을 출품한다. 영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는 총 세 번 그려지는 셈. 언제나 비극적인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진한 사랑의 여운을 남겼다.
주인공들은 내내 서로의 동등한 시선에서 머문다. 그림이라는 소재는 언제나 묘사를 위해 샅샅이 훑는 시선과 그 시선을 온전히 받아내는 무해한 피사체를 연결하는데,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보는 내내 엘로이즈 또 한 마리안느를 관찰한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하는 대사가 영화를 관통하는 이유이다. 또다른 의미의 동등함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에 소피를 더했을 때 드러난다. 고용인(의 딸)과 피 고용인의 관계이지만 셋은 직업과 신분의 위계 없이 소피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연대한다. 저마자 뜨개질과 요리를하며 가로로 긴 테이블에 같은 높이로 작업하고 있는 장면이 평등한 연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소피는 그냥 지나가는 하인이 아님을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된 데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어느 순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그것이 너무나도 허구 그 자체 같아서 피한지 오래였다. 오랜 공백을 깨고 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한 편으로는 꿈 같고, 한 편으로는 지독하게 현실적이어서 아름다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