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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31. 2021

워터 릴리스 (Water Lilies,2007)

불완전해서 더 뜨거운

 

'00이가 12월 26일생이거든, 또래랑 거의 1년이 차이가 나니까..'

 영 공부 생각이 없는 과외 학생을 붙들고 어르고 달래고 혼내켜가며 숙제를 시키느라 진이 다빠진 내게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다. 개월수로 나이를 묻는 갓난쟁이들도 아니고, 중학생인데 대체 생일이 무슨 핑계가 된담.... 갓 '사춘기 소녀'의 나이대를 벗어난 나는 한 반에 있는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저마다 달랐던 것을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하고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년에 따른 신체적, 인지적 능력 차이가 제법 두드러지는 것은 아동기로 끝날 것 같지만  10대로 접어들고 난 사춘기는 또 다른 관문을 열어준다. 몸과 마음이 자라는 속도가 제각각이던 그 때. 저마다 성장통을 앓아내느라 때로는 스스로를, 때로는 서로를 끊임없이 궁금해하면서 상처던 교실 생태계가 떠오른다. 몸과 마음 모두 훌쩍 자라 이제는 내가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조급하기도 하고, 또래보다 훌쩍 커서 언제나 맨 뒤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이에 가깝다. 작은 체구에 갇혀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복잡한 내 마음속은 아무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 불협화음을 영화의 맥도날드 장면에서 가장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열다섯살이지만 해피밀을 갖고싶은 나. 어른도 아니면서 해피밀도 못 사게 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중간에서 부유하는 존재. 

  플로리안, 마리, 안나 모두가 사랑을 외치지만 방향도 크기도 달라 결국 하나의 목소리가 되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되어 공기중에 부서진다. 애정을 대하는 서툴고도 솔직한 말과 행동들이 얼기설기 꿰어져 있을 뿐이다.  감독 셀린 시아마의 다른 작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더이상의 관음을 거부하고 시선의 주체가 된 여인들을 그렸다면 <워터 릴리스> 에서는 온갖 매체에서 손쉽게 판타지로 그려지는 소녀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비록 그게 불완전하고 아픔을 남길지라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이기에 한 명 한 명 주의깊게 지켜보게 되지만 사실 세 아이들의 불온한 성장통은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잊고 있었던 10대시절의 상념-미치도록 남들과 같아지고 싶으면서도 정말로 특별하고 싶었던-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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