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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04. 2022

[에로스의 종말] 7장 - 이론의 종말

                    


 이번 장은 [와이어드]란 잡지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의 "이론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출발한다. 이 글에서 앤더슨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활용 가능해짐에 따라 이론적 모델은 완전히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어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동에 관한 모든 이론을 버려라. 분류법도, 존재론도, 심리학도 모두 잊어라.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누가 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그들의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이고, 우리는 사상 유례없이 정확하게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추적하고 측정할 수 있다. 데이터가 충분하기만 하다면,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한병철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데어터가 작동시킬 수 있는 것은 그저 계산일 뿐이다. 사유는 데이터 이전의 차원에 속한다. 이론은 데이터를 해석하기 전에 미리 주어진 것이다.


 한병철은 계산과 다른 이론의 차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론은 사물이 서로 뒤섞이고 통제할 수 없이 증식하는 것을 막아주며, 이로써 엔트로피의 감소에 기여한다. ... 이론은 모두 세계에 형식을 부여한다. 즉 사물들의 흐름을 일정한 형태로 빚어내고, 이들이 범람하지 않도록 경계를 만들어준다.


 반면 데이터, 즉 정보의 더미는 세계의 엔트로피를 높인다. 이들 정보 더미들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에 의해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낸다.

투명사회, 정보사회는 소음 수위가 매우 높은 사회이다.


 그렇다면 계산에 불과한 이론과 대비되는 참된 이론은 무엇인가?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펼치는 담론을 살펴보자. 그의 말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도취시킨다. 열광에 빠지게 한다. 즉 그의 담론(로고스)에는 그 자체로 에로틱한 유혹이다. 그의 말이 지니는 마력은 아토피아의 부정성에서 나온다. 이 부정성은 에로스로부터 나온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한병철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철학은 에로스를 로고스로 번역한 것이다."
"플라톤은 에로스를 철학자, 즉지혜의 친구라고 부른다."
"에로스는 아토포스적인 타자를 향한 욕망을 불어넣음으로써 사유에 활기를 준다."


 좋은 글과 말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힘이 담겨있다. 그 힘에 사로잡혀 독자와 청자를 지금과는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현재 서 있는 자리를 반성하게 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과감하게 발을 내딛게 한다.


 이런 글이 가지는 힘을 엄정한 논리, 풍부한 데이터, 정확한 분석도구에서 찾을 수 없다. 고개를 끄떡거리게 할 수는 있지만 심장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반면 설명이 부족하여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있는데도 힘이 있다. 감동을 준다. 아니 글 사이의 구멍이 단점이 아니라 힘이 된다.


 한병철은 데이터 계산이 이론을 대신한다며 이론의 종말을 선언하는 데 대해 반박한다. 이론은 데이터 계산은 죽었다 깨어도 가질 수 없는 에로틱한 면을 가진다. 에로스를 통해 타자와 만나며, 그 만남을 통해 세계를 전복하는 부정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 힘이 인간을 바꾸고 세계를 변혁한다.


 정보 더미가 엔트로피를 높인다는 말은 경험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유에 소음(노이즈)를 일으킨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다 보면 엄청난 양의 정보들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 정보 더미의 양이 오히려 혼란을 가져온다.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처음 정보를 찾았던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정보 더미에서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있다. 정보 검색을 멈추고 오로지 조용한 사유 속에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중간중간 이런 멈춤과 고요함의 시간이 없으면 안 된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수업 시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그냥 무의미한 더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별적 사실과 정보를 꿰뚫을 수 있는 큰 이론적 틀을 먼저 가르치고, 그 틀속에서 새로 배우는 지식과 정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학생들이 교과서에 갇히지 않고 넘어서도록 해야 한다. 교과서를 넘어서는 타자와의 만남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생각이 부족했거나 틀렸음을 깨닫는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 깨달음으로 인해 학생들이 세계가 확장되고 변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부의 매력에 대한 깨달음이고 사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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