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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21. 2024

스토아 철학의 부활

(2) 스토아 철학 부활의 사회 문화적 배경

  최근 스토아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최근 현대인들의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마음챙김이나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스토아 철학은 이런 경향과 일치하는 이론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둘째,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가 강조된다. 각 개인은 자신의 행복이 개인적 결정과 책임, 자세와 태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런 개인주의적 경향에 스토아 철학은 잘 부합한다. 스토아 철학은 개인이 가진 의미, 윤리적인 삶, 행복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 셋째, 단순함과 미니멀리즘(Simplicity and Minimalist Living)을 선호하는 문화적 변화에 부합하는 교훈을 제시한다. 스토아 철학은 이성적 판단을 통해 절제하는 삶, 소박한 삶을 강조한다. 단순하고 정돈된 삶의 방식이 행복으로 향하는 열쇠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런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이 최근 주목받는 삶의 방식에 잘 부합한다. 넷째, 현대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운명 앞에 어떻게 인간이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 기후위기, 코로나 팬데믹 경험 등은 거대한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런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불안과 공포로부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스토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다섯째, 현대인이 가진 과학적 세계관과 어울리는 철학 이론이 스토아 철학이다. 현대인들은 인과법칙에 의해 운행되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신의 명령이나 섭리, 인간/이성 중심적 세계관에 기초한 대부분의 종교나 철학은 더 이상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런데 스토아 철학의 세계관은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과 대동소이하다. 이런 점이 바로 현대인들이 스토아 철학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덜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위와 같은 설명은 현대의 사회 현상에서 스토아 철학이 부활한 이유를 찾고 있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사회 경제적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있다. 즉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와 현대 사회 사이에 어떤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에 스토아 철학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삶의 맥락(context)에서 공유할 점이 있어야 이론(text)이 제대로 이해되고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고대 그리스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연합하여 서로 경쟁하고 연합하는 구조였다. 각 도시 국가들은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과 견해를 가지고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교환에 참여했다. 특히 아테네는 민주적인 정치제도가 발달하여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철학 사상들이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스토아 철학 역시 이런 환경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했다. 현대 사회는 민주적인 제도가 정착되고 국민들이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토론된다. 이는 고대 그리스와 매우 유사하다.


  둘째,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다양한 문화와 활발하게 교류되는 사회였다. 여러 문명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이런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다양한 철학적 사상과 아이디어를 주고 받으며, 그 과정에서 융합과 창조를 거치며 새로운 철학 사상이 탄생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현대사회는 교통과 통신 수단의 비약적 발달로 인해 전 세계가 빠르게 교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정보와 지식을 실시간으로 교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런 환경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와 유사하다.


  째,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교육과 학문 연구를 중시했다. 자유로운 사고와 지적 탐구가 존중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자유롭게 탐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이들의 이론과 사상은 사회, 정치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많은 교육기관과 학자, 이론들이 활발하게 탐구되고 그 중요성을 존중받고 있다. 학문 연구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유하려면 그 사람과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공감과 이해가 불가능할만큼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삶의 배경이 비슷하면 그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철학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서 생성, 발전한 철학 이론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스토아 철학은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삶의 기술'이 핵심이 되는 철학이다. 스토아 철학을 내 삶의 지침으로 삼으려면 생각과 느낌의 공감과 공유가 더욱 더 필요하다. 가령 세네카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글을 쓰고 있는 세네카가 처한 상황이 이웃 형님처럼 연상될 수 있어야 한다. 세네카의 [행복한 삶에 관하여]를 읽으며 뒷부분에서 현명한 사람은 굳이 부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논증을 펼칠 때 세네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머리 속에 생생하게 떠올라야 한다. 세네카는 로마에서 손꼽히는 정치적 유력가였다. 당연히 상당한 재산을 가진 부자였다. 그런 세네카가 욕망을 피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변 사람들 중 세네카를 가리켜 이론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세네카는 현자의 부에 대해 논증하며 이런 사람들의 비난을 머리 속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되어 내 삶을 바꾸지 않을 것이오. 사방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져도 나를 욕보일 수는 없소. 어떤 공격도 나에게는 불쌍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들릴 뿐이기 때문이오."(그럼에도 인생은 흐른다, 페이지2북스, 181쪽) 


  세상 초연한 철학자처럼 근사한 논리와 표현으로 현자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논증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천하의 세네카도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의 기운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다. 비판자들을 향해 '불쌍한 어린아이' 같다며 은근히 비난한다. 이런 세네카의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은 당시 로마의 사회적 환경이 지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SNS에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과 모멸주기가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는가? 그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해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에 대해 세네카가 느꼈을 생각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마치 SNS에 글이나 사진을 올렸는데 익명의 방문자로부터 터무니없는 비난 댓글을 받아 화를 내는 동네 형님과 같은 느낌이다. 이후 세네카가 전하는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 교훈을 실천하기 거의 불가능한 허황된 이론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진심어린 충고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스토아 철학의 부활'이란 현대인들이 스토아 철학의 이론과 교훈을 지나간 과거의 이론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살아있는 삶의 기술이자 충고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후 스토아 철학을 다루면서 이런 스토아 철학의 '현재성'을 기본 전제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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