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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Mar 23. 2024

[서평]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자연'의 뜻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겨난 대상과 환경"으로 풀이된다.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것,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타자'다. 이 타자는 근대 이후 인간에게 정복의 대상이었다. 인간은 자연이 숨겨놓은 비밀을 과학의 힘으로 알아냈다. 그 앎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자연은 인간의 풍요를 위한 정복과 이용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자연정복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풍족해졌다. 경제적 풍요뿐 아니라 의학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까지 비약적으로 늘려놓았다. 최근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중증 질병을 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까지 정복하겠다는 오만한 선언까지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자. 현대의 인간은 풍요롭지만 행복하지 않다. 풍요가 곧 행복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풍요 속에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불행이 인간의 삶에 죽음보다 치명적인 생채기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자연정복을 위한 근대의 과학적 기획이 진행되는 중에도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숲을 없애 목재를 얻거나 도시를 세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숲에서 자연이 주는 휴식과 위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을 자신의 목적 아래 굴복시켜 주인 행세를 하기보다 자연과 친구처럼 어울려 지내는 데 더 큰 행복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연은 정복자가 아닌 친구에게만 제공하는 선물을 선사했다. 여기에 풍요보다 중요한 공존의 행복이 있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자연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미셸 르 방 키앵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장이자 20여 년간 뇌와 신경을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자연과 행복 사이에서 인간이 뇌 속에서 펼쳐지는 숨겨진 스토리를 찾아낸다. 이 책은 그 비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의 부제는 "뇌과학이 밝혀낸 자연이 선물하는 만족감의 비밀"이다.


  이 책에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자연은 숲, 바다, 물, 새벽, 색깔과 빛, 식물, 자연의 주기와 리듬, (반려) 동물, 흙, 별이다. 세계에서 보기 힘든 어떤 특별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이런 자연은 우리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으로 인해 뇌 속에는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자연에서 뇌로 이어지는 행복 프로세서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가 이 과정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는지 소개하기 위해 한 두 가지만 알아보자. 


  첫 번째로 숲에 대해 알아보자. 숲은 자율신경계를 자극한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뉜다. 교감신경계는 두려움, 분노, 스트레스 상황에서 작동한다. 신장 바로 위에 있는 부신을 자극하여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게 한다. 부교감신경계는 외부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심장박동, 호흡속도, 혈압을 낮춰 우리 몸에 휴식을 주며 생체기능의 회복을 돕는다. 양자는 서로 대립적으로 작용하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모든 신체기능이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먼저 숲은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숲 속을 산책할 때 부교감신경계 활동은 100% 증가하고, 교감신경계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그 농도가 16% 감소한다.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이 냄새는 후각을 자극한다. 그런데 뇌 속 후각중추는 감정과 정서를 관장하는 편도체 가까이에 위치한다. 후각은 감정과 정서에 자극을 준다. 숲의 냄새는 후각 자극을 통해 편도체에 편안함을 제공한다. 때문에 숲 속에서 인간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만성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을 과잉 분비하도록 한다. 본래 코르티솔은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데 과잉분비될 경우 소염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코르티솔은 사이토카인을 백혈구에 분비한다. 이 사이토카인은 염증을 막기 위해 백혈구를 증가시킨다. 백혈구는 여기에 또 사이토카인을 더 많이 생성하도록 한다. 만성 스트레스는 이렇게 해서 사이토카인 폭풍을 유발하게 된다. 이는 감정이나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때문에 만성 스트레스는 우울증, 알츠하이머와 같은 뇌질환을 유발한다. 숲 속 산책은 사이토카인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자연과 접촉한 사람은 주의력과 집중력이 높아진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의 또 다른 연구도 살펴보자. 정신적 스트레스 중 자꾸 어떤 생각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것이 있다. 이를 정신적 반추라고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을 계속 반복해서 떠올리거나 미운 상사나 동료로부터 받은 상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경우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뇌 속에서 전대상피질이라는 부분이 과잉활성화된다. 그런데 숲 속을 산책하면 이 부위가 진정되어 불안감과 강박증상이 완화된다고 한다. 정신적 반추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도 그렇다. 이럴 때 가까운 숲을 찾는 것이 좋은 치료방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햇빛이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망막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광수용체가 있다. 이 수용체는 뇌의 시교차상핵이라는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시교차상핵은 빛을 쐴 때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호르몬이 있다. 해가 지면 멜라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여 잠이 오게 한다. 아침이 되면 햇빛이 시교차상핵을 활성화시키고 솔방울샘을 억제하여 멜라토닌의 생성을 억제한다. 이는 각성 상태가 되도록 만든다. 잠에서 깨는 것이다. 저녁에 멜라토닌이 분비되고 낮에 억제되는 리듬이 깨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현대 도시는 잠들지 않는 밤을 연출한다. 이는 저녁에 멜라토닌이 분비되었는데도 잠들지 못하는 환경을 만든다. 이런 환경은 멜라토닌이 우리의 감정을 침체시키고 슬픈 생각에 잠기게 자극하는 결과를 유발한다. 


  세 번째 반려동물로 인한 행복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과 동물은 거울뉴런으로 인해 서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거울 뉴런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음식을 먹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음식을 먹는 사람과 같은 뇌의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하자. 음식 먹는 걸 지켜보기만 해도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뇌의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뇌 활동의 동기화가 가능한 것은 바로 '거울 뉴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거울 뉴런은 사람들끼리만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과도 거울 뉴런을 공유한다. 그래서 가까운 반려동물의 경우 서로 같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공감능력은 동물을 쓰다듬는 행위만으로도 몸에서 스트레스 예방 호르몬인 엔드로핀을 분비하도록 한다.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억제한다. 그래서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이런 현상을 이용하여 환자들에게 반려견과 접촉하게 하는 병원이 있다. 알츠하이머나 자폐증 환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데 반려동물을 활용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이 세 가지 외에도 우리 주변의 자연이 우리 뇌에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 그 뇌과학적 메카니즘을 잘 설명하고 있다. 막연한 자연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대단히 유용한 정보를 다수 제공한다. 이런 정보들은 막연하게 자연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에 강력한 과학적, 이론적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다만 이 책의 결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지식 충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저자는 자연에 대한 몰입은 지적인 경험이 아니라 육체적인 경험임을 강조한다. 


  "표면적인 자연 관찰은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자극을 추구하려는 일부 사람들에게 착각을 주는 속임수로 작동할 수도 있다.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자연을 경청하는 방법, 자연이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내버려두는 방법, 자연의 다양한 감각이 우리를 침범하도록 내버려두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오래간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좋은 책이란 지적 자극과 함께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바로 제목이다. 제목이 너무 문학적이다. 이 책은 문학적인 표현보다 과학적 정보 제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런 책의 내용적 특징을 감안할 때 제목이 너무 문학적이라 문제가 생긴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간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부제인 "뇌과학이 밝혀낸 자연이 선물하는 만족감의 비밀"을 제목으로 하는 게 더 나았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놀면 제목이 내용을 가려버리는 결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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