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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Sep 10. 2023

거울 속의 나와 마주하는 일

아무튼, 다이어트

어려서부터 나는 튼실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그렇다고 튼튼한 아이는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일지 평균을 웃도는 키에 도달한 덕분에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주변에서 부러움을 살 때마다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렇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키만 걱정 없는 것뿐이었다. 분명히 최신 의료기술로도 가질 수 없는 우성 인자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왜 인지 감사함 보단 큰 키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어렸을 때 수영을 한 것도 아닌데 듬직하게 떡 벌어진 직각 어깨는 늘 남자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부러우면 가져, 라며 쿨하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세트로 얼굴도 까무잡잡해 어려서부터 ‘흑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어 다녔다. 가족들은 까만 얼굴이 예쁜 거라며 놀리는 친구들에게 보태준 거 있냐고 대꾸해 보라고 했지만 실제 흑인을 본 적도 없는 것들이 놀린다고 대항하기엔 너무 어렸다. 차라리 흑인처럼 운동이라도 잘했으면 이미지라도 구축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제일 싫어하는 게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일을 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움직이는 우리 가족이지만 왜인지 운동 앞에선 모두 뒷걸음질 쳤다. 간간히 골골거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들 큰 병 한 번 겪지 않고 장수하는 운명을 타고나 운동을 해야 하는 최소한의 사유조차 없었달까. 그런 가족 사이에서 자란 나는 운동과는 연을 맺지 않고 살아온 아이였다. 


아무리 각자의 개성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왔다지만은 그래도 하얀 얼굴을 가지고 싶니, 아니면 까무잡잡한 얼굴을 갖고 싶니?라고 물어본다면 후자를 택하는 여성은 많지 않을 듯싶다. 커가면서 내 몸이 부끄럽다고 느껴진 어느 순간이 있다. 그때부턴 샤워를 할 때 옷을 벗고 거울 속 그대로 비친 내 몸을 마주하는 일이 정말 괴로워 샤워하기가 싫을 정도였다. 깔끔한 곡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필요한 곳에 볼륨이 있어 깔끔한 곡선형 몸매도 아니고,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내 몸을 아무리 나라도 사랑해 주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낮은 자존감은 거울을 볼 때마다 이때다 싶어 튀어나왔다. 다행히 박스티가 유행했던 시절이라 최대한 커다란 박스티로 몸을 가리기 바빴지만 드넓은 어깨는 도무지 숨겨지질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복을 입으면 청량하고 청순한 미를 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운동을 하지 않아도 튼실한 다리는 청순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렇게 여성스럽지 못할 바에는 남자가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다니곤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자임은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대중적인 통념 속에 물들며 자란 우리들은 인생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습관적으로 원인을 외관에서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외모에서 시작된 낮은 자존감은 일상 곳곳에서 나 자신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내가 싫어지기 시작하면 주변에 모든 게 싫어지기 마련이다. 어릴 적 서부터 부족한 사랑을 받아온 것도 아닐 텐데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여감, 지구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외로움을 도무지 씻어낼 수 없다.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고 느껴질 땐 연예인도 쉬운 직업이 아님을 알면서도 외모라도 예뻤으면, 볼멘소리를 해본다.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불안’은 자기 계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 잠시 삐끗할 땐 한없이 나 자신을 우주 속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불안’을 떨쳐내기보단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맘 편한 소리를 하지만 꼬여버린 마음에 책을 덮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다이어트의 첫 시작은 거울로 몸을 보는 일이다. 늘 나에게 하기 싫은 숙제 같던 일이었는데, 초반에는 ‘포기하지만 말자’가 목표였을 정도로 현재 내 몸을 부정하지 않고 보완할 부분을 찾아내는 일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일 나 자신을 격려하고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나 혼자만의 보폭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뿌듯하고 즐거웠다. 또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한 사람임을 상기시켰다. 이제는 익숙하게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거울에 비친 나의 몸을 본다. 여전히 다른 누가 보기엔 울퉁불퉁 한 몸일 수도 있다. 배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볼록 나와있지만 이 정도면 귀엽다고 용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얼굴은 어제보다 조금 더 쳐진 것 같지만 그래도 슬며시 웃어본다. 그래도 웃는 건 예쁜 것 같기도, 이건 아닌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이전에 나와 완벽히 같진 않아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군가에게 다이어트를 하면 다 좋아질 거에요라고 어설픈 조언을 할 순 없겠지만 당신 자신을 위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될 마음이 생겼다면 기꺼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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