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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Oct 02. 2023

걷기가 유일한 운동이었던 날들

아무튼, 다이어트

돌이켜 보면 살이 쪄서 할 수 없는 일이 꽤나 많았다. 스모 선수들처럼 내 변 하나 처리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니 하지 않은 일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가까운 표현일 것 같다. 최고로 살이 많이 쪘던 시절엔 거울에 비친 배를 보고 있노라면 건강한 임산부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완곡한 D자 곡선을 그렸다. 애매하게 배에 힘을 줘 보지만 가운데만 움푹 들어가 오히려 기이한 형상을 이룰 뿐이다. 있어 보이게 칭하자면 서양 배 스타일인 나는 유독 배를 둘러싼 복부에 살이 많은 편이다. 살이 쪄도 배에 가장 먼저 찌는데 빠지는 건 희한하게도 늘 가슴이 먼저 빠진다. 유튜브를 보면 유산소는 가슴이 빠지니 근력으로 채워 넣으라는데, 왜 나는 근력을 해도, 유산소를 해도 가슴이 먼저 빠지는 걸까. 누가 운동할 때 내 가슴 좀 잡아주었으면 싶을 때가 많다. 딴 길로 이야기가 샜지만 아무쪼록 배를 시작으로 등, 얼굴에 살이 붙어 팔목까지 살이 쪘다면 거의 하루 이틀 굶는다고 해서 돌아올 몸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후회해도 늦었다. 이런데까지 살이 붙을 수 있나 싶었지만 살이 가장 많이 쪘을 때는 발목, 발등까지 살이 불어 오른 게 느껴졌다.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우선 대학생의 패기로 스트릿 댄스를 추고 다녔던 시절 약간의 부상을 입었던 무릎에 살이 찌니 앉았다 일어서는 간단한 일조차 쉽지 않게 만들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싫어지면 꼭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곤 모든 일에 소극적여진다. 아침에 일어날 때 무거운 몸, 스트레칭으로 풀리지 않는 뻐근함, 오래 앉아있거나 서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느껴지는 하체 부종. 붓지 않아도 두꺼운 다리가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와중에 세트로 다음날 부기가 빠지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라며 자기 합리화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뭐라도 해보겠다며 집에서 부산하게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들을 자극하는 날엔 다음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근육통. 어쨌든 근육이 생기니 통증이 오는 거라며 오늘은 쉬어간다.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맘에 드는 운동영상을 시청하고, 포기하지 말라는 영상 속 트레이너 선생님 말씀에 시작도 하지 않은 나는 잠깐 머쓱해지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시청한다. 이 쉽지 않은 운동을 끝까지 해내신 분들의 댓글을 보며 진짜 힘들겠다, 대단하다며 공감해 드리고 다음에 해봐야지 마음먹을 뿐. 김치 익히듯 몇 개월이 넘게 저장된 콘텐츠는 쌓여만 갔다. 또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억척스레 나는 땀이 싫었다. 지금이야 운동은 땀을 흘려야 제맛이라고 얘기하고 다니곤 하지만 조금만 제대로운동이란 걸 할 때면 주변에 뽀송한 얼굴들과 대비되는 거친 숨과 안 그래도 없는 주인의 몹쓸 체력을 기어코 들키게끔 만드는 눈치 없는 땀구멍들을 막아버리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체중 감량을 위해 마냥 식단만 줄일 순 없었다. 살이 빠지는 건 좋지만 기력도 함께 빠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긴 어려웠다. 운동체력은 하위 1%였지만 일체력은 상위 1%라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몇 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무기력할 때일수록 몸을 더 움직여야 한다는 건 알지만 뭐라도 하는 날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게 현실이다. 평생 운동과는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던 기세의 나 자신과 볼 수 있던 타협점은 걷기였다. 무릎 아플 일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만만했다. 처음엔 운동화를 신고 밖을 나가기를 목표로 시작했다. 한 시간을 걷던 두 시간을 걷던 나에겐 집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마음먹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함없다) 추운 겨울날 같이 다이어트를 계획하던 친구랑 입김을 내며 기를 쓰고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딱 땀이 나지 않을 만큼만.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결론적으로 걷기로는 단 1g의 살도 빠지진 않았지만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지금의 모습을 이루어 내었다고 믿고 있다. 이제 걷기는 운동이라기 보단 생활에 가깝다. 보통 심신을 단련시키고 내면의 기운을 모을 때 명상을 추천받곤 했었는데 나에게 눈을 감는 일이란 잠으로 이르는 지름길일 뿐이다. 걷는 일은 공중에 떠다니는 많은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마음속에 꽁꽁 뭉쳐있던 생각들을 아주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공중에 흩날리는 느낌이랄까. 실내보단 실외에서 하는 운동인 만큼 내가 내쉰 공기가 아닌 신선한 공기를 깊게 들이쉬고 몸속 곳곳을 거쳐 내쉴 때의 후련함. 다음 이야기에선 좀 더 내가 좋아하고 추천하고 싶은 걷기를 소개할 참이다.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걷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 목적지 없이 걷기

- 해외에서 걷기 (뉴질랜드)

- 함께 걷기

- 늦은 밤, 새벽 걷기

- 생존으로서의 걷기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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