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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poty Oct 09. 2023

어떤 걷기를 좋아하세요?

아무튼, 다이어트

요즘 운동하시는 거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보통 많은 사람들은 약간 머쓱해하면서 걷기라고 대답한다. 걷기는 한 끗 차이로 운동이 되기도 하고, 생활이 되기도 하는, 운동과 생활 그 사이 어디쯤 모호하게 걸쳐져 있는 흥미로운 존재이다. 지난 화에 쓴 것처럼 체중이 너무 무거워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절 나의 무릎이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걷기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에게 걷기가 운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시간이 나서 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되면서 걷기란 일이 새롭게 다가왔다. 다른 운동들처럼 유튜브에 걷기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 여러 장소, 시간에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조금 빠르게, 때론 느리게,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곁들이기도 해 가면서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생겼다. 큰 범위에서 모두 같은 걷기이지만 그날의 기분, 날씨,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조합의 걷기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나의 취향을 알고 있다는 것은 필수적이라곤 할 순 없지만 인생에 꽤 많은 재미를 부여한다. 살면서 지금까지 걷기에 대한 취향을 면밀히 생각해 보거나 누구와 공유해 본 적은 없었는데, 조심스럽게 나누어볼까 한다. 독자분들도 공유하시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댓글에 남겨주셔도 좋은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


정처 없이 걷기

일을 하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작은 것들이 쌓여 머릿속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까만 먹구름이 자욱해져 발전적이고 밝은 생각보단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든다. 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끙끙 싸매고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 실내에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머리가 더 띵-해지면서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땐 되도록이면 그냥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간다. 어딜 가는지는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 그저 나의 가슴을 뻥 뚤어줄 공기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할 뿐이다. 5분, 10분 이어도 좋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흡연을 하시는 분들은 이런 마음으로 밖을 나가시는 걸까 싶기도 하다. 흡연자라면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싶은 시기에 나가면 되겠지만 피지 않는 사람은 일을 하다 보면 그런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것이 가끔 억울해질 따름이다. 어찌 되었든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서 숨을 고르며 조금은 마음의 소란이 잦아들면 점점 주변의 풍경이 보인다. 벽에서 피어난 꽃들, 어디론가 급히 가는 사람들, 얼굴에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에 복잡한 생각들을 내보낸다. 이런 식의 걷기는 짧은 시간이라도 굉장한 리프레시 효과를 느낄 수 있어 추천하는 걷기.

함께 걷기

정처 없이 걸을 땐 보통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함께 걷기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평소에 쉽게 말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도 하고, 친구와 뜬금없는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한다. 오래된 연인들은 자연스레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애매한 시기의 관계들은 아무 말하지 않고 걷는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속에서 느끼고 있을 설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시간은 느린 듯 하염없이 그런 시간들이 다 풋풋하고 순수했던 우리의 모습이었다. 함께 걸으며 주변에 보이는 풍경에 대해서 지난 기억들을 꺼내보기도 하고 대화 속에서 또 추억이 쌓여간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거을 때 왜인지 평소보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있다. 반려묘는 함께하기 어렵겠지만 반려견과 함께 걸을 땐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알 필요도 없겠지만 이전에 많은 다른 견주들이 걸었을 변뇨 스팟을 공유받게 되곤 한다. 나의 1/10도 되지 않는 작은 몸에서 어떻게 인간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나오는지 가끔은 내가 산책을 당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함께 걷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안정감이 좋다.


해외에서 걷기

해외에 가면 유독 많이 걷는다. 돈이 없던 시절엔 렌트비가 아까워서 걷기도 하고, 해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엔 겁이 나기도 했다. 걸을 수 있는 거리인 것 같아 이곳저곳 가다 보면 금세 몇만보를 넘어버린다. 유럽에서 걸을 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의 문화가 보이고, 눈에 보이는 건물들 하나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요즘은 특히나 휴대폰에 배터리만 넉넉하다면 발길 닿는 곳으로 사람들을 따라가 보기도, 갑자기 계획하지 못한 곳을 가보기도 하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아닐까? 근래 가장 기억나는 걷기는 뉴질랜드였다. 자연을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머리에 자리 잡혀서 인지 들이마시는 공기마다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새벽 내내 오는 비에 수분을 촉촉이 머금은 잔디 위를 걸을 때도 있었고 때때로 진흙 위를 걸을 때도, 조금 위로 올라가면 눈이 켜켜이 쌓인 산을 오르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전거 보단 걷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어디서부터 걸어온 건지 모르겠지만 걸음에서 오는 여유와 웃음이 좋았다. 가파른 언덕보단 완만한 언덕이 많아 천천히 걷다 조금 숨이 가빠질 때쯤엔 넓게 펼쳐진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진 크고 작은 나무들, 다들 몇 살쯤 됐을지 나무들이 보냈던 오랜 세월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진흙 위에서 맘껏 뒹구는 어린이들, 강아지들, 저렇게 자유롭게 나뒹굴었던 때가 언제였던지 새삼 떠올려본다. 유럽을 가면 특히나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외투하나 걸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우산도 쓰지 않고 걷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의 탈모부터 걱정되는 토종 한국인이지만 쿨하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하다.


생존으로서의 걷기

예전에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핸드폰 배터리도 나가고 설상가상으로 지갑도 잃어버린 와중에 파리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하루 내에 걸어가야 했던 일이 있었다. 지금 찾아보니 서울의 1/6 정도인 크기의 파리이지만 출발지와 도착지만 표시된 종이 관광지도를 펼쳐 들었을 땐 마치 국제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타지에서 생을 마감할 순 없다’는 집념뿐 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때만큼 내가 건장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GPS가 없으니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지나가는 프랑스인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대부분 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는 것 같아 보였지만 프랑스어로 대답할 뿐이었다. 외국인들이 오면 누구든 친절하게 영어로 대답해 주는 한국사람들과 비교하며 투덜대고 싶었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떠한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프랑스어를 한 자도 알아듣진 못했지만 희한하게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절박해 보이는 나의 얼굴에 몇몇 프랑스 사람들은 나를 최대한 자기가 데려다줄 수 있는 곳까지 함께 해주기도 했다.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프랑스어로 어떻게 하는지 물어 진심을 다해 ‘메르시 부꾸’만 반복해 지금도 그 단어는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역시 언어는 직접 사용해 봐야지 느나 보다. 그때 내 몰골은 지나가던 거지가 나에게 다가와 돈을 요구하다가도 한숨을 푹 쉬더니 갈길 가라는 듯 길을 내 줄 정도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물론 털어갈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소매치기가 많다는 프랑스에서 훔쳐진 물건 하나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니, 의외로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참 많다.


늦은 밤, 이른 새벽 걷기

늦은 밤, 이른 새벽은 길에 사람이 별로 없다. 아무도 내 앞을 가로막지 틈을 타 평소보다 조금 빨리 걸어본다. 어둠이 짙게 깔릴 때 학교 운동장을 걸으면 스산한 느낌에 등줄기에 땀이 한 방울 흐른다. 이런 까마득한 어둠 속보다는 미약하게라도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생각보다 이 시간에 걷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한다. 운동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빠른 걸음을 걷는 사람들,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시선으로 멍-때리며 걷는 사람들, 누구와의 통화인지 심각한, 또는 크게 웃으며 걷는 사람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서 늦은 밤, 이른 새벽엔 특히나 주변에 소음이 없어 나의 호흡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호흡이 가빠질 땐 조금 걸음을 늦추어 보기도 하고, 최대한 길게 들이쉬고, 또 내쉬어 본다. 특히 늦가을 무렵부턴 이슬이 찬 새벽엔 내쉬는 숨에 입김이 가득하다. 처음엔 스산한 추위에 괜히 걸어 나왔나 싶다가도 빠른 걸음을 재촉해 몸에 피가 감돌고 열이 오르는 기운을 느껴본다. 보통 이렇게 걸으러 나올 땐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주변이 조용하니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만 집중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자연스러운 소리도 들어보는 여유를 내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눈앞에 삶에만 집중하다 보면 숨이 가빠지기 마련인데, 너무 치열하게 살아 나도 모르게 내 내면을 뒷전으로 놓을 때가 있다. 이렇게 가끔이라도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일도 습관을 들여놓지 않으면 순식간에 내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되곤 한다. 호흡을 놓치게 되지 않게 가다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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