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의 최근 근황 및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그간의 글들보다는 조금 사적인 글을 풀어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글을 쓰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혼 소송이 쉽사리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것에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고 나뒹굴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그대로 살면서, 조용히 에너지 레벨이 떨어졌습니다. 어디 티 낼 곳이 없으니, 티 내지 않은 채로 조용히 혼자 침잠했습니다. 나름대로는 '이혼소송의 슬럼프' 기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저는 브런치 글에서 제 이혼의 사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글의 목적을 철저하게, 이혼 소송을 앞두고 막막하신 분들을 위한 정보제공 측면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결혼생활이 이혼으로 이어진 경위를 쓰는 것은 글을 시작한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서 제가 제 이혼 의사결정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는 점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소개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자식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이혼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에 따라서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자식에게 한 번도 티 내지 않아 왔으며, 아빠와의 만남을 적극 장려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제가 바라 온 대로, 저의 자식은 양쪽 부모 모두와 사이가 매우 좋습니다. (이렇게 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은, 이혼 절차 중이시거나 혹은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 모두가 공감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제가 목표한 방향대로 양쪽 부모를 모두 다 사랑하는 아이를 보며, 가끔 제 결정에 대해 고통스러울 정도의 의문을 품었습니다.
흔하디 흔한 고민 지점이었습니다. 자식이 '아빠와 함께 살 기회'를 제가 박탈해도 되는가?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혼은 지극히 합당한 결정이었으나, 과연 자식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였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한동안 이 의문 속에서 헤매며 괴로워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에 맞닥뜨렸습니다. 내가 과연 내 자식을 위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어쩌면, 나의 다른 욕구로 인해 고민하면서 자식을 위하는 것인 양 명분을 끌어다 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과연 진실로 정직한지, 제 고민의 과정에서조차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의심이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심으로는, 부모의 이혼 그 자체가 자식에게 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가정의 형태보다는 그 가정에서 실제로 제공하는 정서적 기반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신념이 아니라, 실제 주변의 많은 사례를 보며, 그리고 제 스스로 겪은 경험들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또한, 저는 자녀 양육에 관해서는 옛 배우자를 전혀 배제하거나 배척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분노에 휩싸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선 확신이 있던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잠시나마 이혼을 회의하며, 그 이유로 자식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인지 꽤 오랜 기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저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 생각의 과정에서 저는 제가 결혼 의사결정을 하던 시기로 돌아갔습니다.
이혼을 결정하는 많은 이들이, 배우자가 "결혼하고 나서 돌변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최소한 결혼 준비시기에 들어서서라도, 사람은 반드시 본연의 성품을 티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상대의 결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했었다'라는 인식이 찾아왔고, 이는 제게 많은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이는 깊은 자괴감이었습니다.
변화를 향한 어떤 동력에는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장기간 이어지는 이혼 소송 도중에, 잠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약해져 에너지가 떨어졌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당장의 아프지만 옳은 선택을 회피하려 하는 성향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결혼을 결정했을 때와 동일한 오류가 제 안에서 반복되려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쭉 반복할 보편적인 오류가 제 안에서 되풀이될 뻔한 것입니다.
제가 이혼을 결정한 이유는 객관적으로도 명확했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명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주관적으로 이 결정의 당위만 확실하다면, 그것에 충실하면 될 뿐이었습니다. 저는 '애 때문에 산다'며 이혼하지 않고 살면서 불행한 삶으로 인한 감정의 찌꺼기를 자식에게 던지는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비슷한 오류를 일으키면서 그 이유로 똑같이 자식을 끌어다쓸 뻔한 것입니다.
설사 자식이 나중에 큰 이후에 "왜 이혼했어"라고 제게 따진다 한들, 그에 대한 설명과 설득의 책임을 기꺼이 지고 자식에게도 결혼생활이 너무도 불행하면 너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희망했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소송은 참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긴 시간 동안, 모든 쟁점이 해소될 때까지, 법적으로 기혼인 상태로 사람을 묶어둡니다. 일단 이혼은 한 후 재산분할, 양육비 등 다른 쟁점을 다툴 수 있는 미국과는 아주 다릅니다. 유책주의를 택하여 상대의 잘못을 증명해야만 소송이혼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여타 국가들과는 꽤나 다릅니다. 보수적입니다.
제가 겪은 심적 고통은 어떻게 보면 제도로 인한 피해입니다. 저는 성인이며, 자식도 낳아 기르고 있는 멀쩡한 엄마입니다. 성인으로서의 충분한 판단력을 가지고 고민한 끝에 이혼을 택했고, 합의를 하지 못해 법원에서 법적으로 갈라주길 요구했습니다. 형사법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생활 영역에서 변경을 구했을 뿐이지만, 저는 장기간 혼인상태를 해소하지 못하여 긴 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과도기가 가혹한 탓에, 소송으로 인하여 결혼 제도가 무서워질 정도였습니다.(이렇게 이혼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결혼을 다시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조명해야만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는 장시간의 소송기간으로 인해 치열한 내적 투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은 제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무리 외관상 잘 풀려가도 정신적으로 힘들면 넘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은 쓸모없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느꼈습니다.
결론은,
저는 아주 짧은 기간의 이혼 소송 슬럼프를 겪고, 그 슬럼프에 대한 꽤나 몇 주간의 고민을 거쳐, 이제 다시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저도 주변에 이혼을 한 이들이 있는데, 누가 봐도 당연히 이혼해야 할 일(가정폭력 등)을 겪은 경우에도 이혼 진행 중에 한 번쯤 슬럼프를 겪습니다. 이혼할 만한 일이 아닌가-라며 회의해서가 아니라, 이혼이 참 힘든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힘든 것을 회피하려 하니까요. 저는 제 글이 이혼 의지를 꺾는 글이 아니라, 이혼 진행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글이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슬럼프 등 감정의 출렁임이 들어간 글은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을 쓰지 않으면 어쩐지 솔직한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하지 않은 글은 누구에게 가 닿을 수도 없지 않을까 싶었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약해졌던 순간에 대한 글도 써 보았습니다.
힘들 때는 새롭게 출발하는 순간에 대한 희망을 가지려 합니다. 제 꿈은, 이혼 소송이 끝맺음되고 나서 아이와 함께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와 함께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푹 쉬고 싶습니다.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다시 한번 완전히 자유로워진 나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나갈 삶에 대한 계획을 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