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글에서 별도로 글을 쓰기로 말씀드렸었던 주제입니다. 이혼을 직장 사람들에 밝힌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혼이 아무래도 가볍지는 않은 주제이다 보니 대화 속에서 편안하게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 중인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예전 글에서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혼을 공개하는 것이 나을지 여부에 대해, '공개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때 생각한 대로 이혼 판결을 받고 나서부터는 주변에서 남편 이야기를 물으면 이혼 사실을 밝혔습니다.사소한 대화 속에서 이혼을 밝히게 되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 남편은 애 잘 보니?(면접 교섭하는 것도 애를 잘 보는 것이라면 굳이 이혼 밝히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겠군요)
- 둘째 생각은 있니? (남편이 없으니.,)
- 명절엔 시댁 가니? (시댁이 없어졌으니..)
같은 별것 아닌 일상 질문들입니다.
이에 대해 이혼을 숨기고 대답하려면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저는 거짓말을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혼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하려고 생각하고 나니, 고민스러운 상황들이 생겼습니다. 예컨대, 제가 지인들에게 갑자기 연락을 취하여 '저기, 사실 제가 최근에 이혼을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저의 사생활에 남은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으니, 저렇게 선언하듯이 고지를 하기도 좀 민망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전에 전혀 알리지 않다가, 여러 사람이 섞여 있는 식사자리 등에서 대화 중에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갑작스레 '아 제가 이혼을 해서요'라고 말을 꺼낸다면, 제가 아무리 자연스럽고 쿨하게 넘어간다고 해도 대화 자리의 분위기는 갑자기 얼어붙을 수 있었습니다.실제로 그런 경험을 한번 했습니다. 제게 질문한 사람이 너무 미안해해서, 본의 아니게 제 이야기가 상대를 사과하게 만들고 당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또한,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야 적절한 자리인데 제가 갑자기 폭탄급 주제인 이혼을 꺼냄으로써 갑자기흐름을 끊게 되는 부담도 느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수습하는 것은 제 몫이니까요.
이 역시 이혼이 아무래도 아직은 사회적으로 조금 무거운 주제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이혼에 대해 개방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할리우드는 아니니 말입니다. 이혼에 대해 제 마음가짐은 쿨하게 먹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섣불리 꺼내기에는 무게 있는 주제라는 현실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직장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저도 딱히 가장 좋은 처신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마음을 '어쩔 수 없다'라고 먹었습니다. 이혼 소식이 회사에 퍼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 때문에 조금 불편해지는 것은 수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직속 상사 라인에 계신 분들께는 직접 말씀을 드렸습니다. 직원의 중요한 신상 변화이니 말씀드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사생활이니 꼭 말씀드려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저도 고민을 꽤 했습니다. 괜히 얘기를 했다가 바라지 않는 배려를 받게 되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혹시 '가화만사성'이란 생각으로 저를 안 좋게 보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식사자리 등에서 교류하다 보면 일 얘기만 나오는 것이 아닌데, 이혼을 속이려면 자꾸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니 버거웠습니다. 이혼했다고 해서 안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이 부분은 개인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생활을 모두 낱낱이 얘기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요.
직속 라인이 아닌 분들에게도 친하게 지내던 분이라면 되도로 직접 말씀을 드렸습니다. 친한 분들에겐 소문을 통해 접하게 하는 것보다 직접 얘기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오히려 그 정도 친분은 없으면서 식사자리에서 제게 결혼 질문을 하셨을 때, 앞서 말씀드렸듯이 갑자기 '이혼했어요'라고 말하기 어색한 경우가 가장 어렵습니다. 친분이 조금 있으면 일단 그 자리에선 우회하고 나서 따로 말씀드리면 충분히 편안히 넘어갈 수 있었는데, 친분이 없는 경우면 그 자리 이후에 따로 말씀드리기도 오버스러우니까요.
이런 경우엔 분위기를 봐서 조금 비슷한 연배끼리의 편안한 자리라거나, 아니면 술자리라서 어느 화제든 다 소화되는 경우라면 상대를 조금 당황시키더라도 얘기를 한 후 수습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혼을 말하지 않거나 우회하며 넘어가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곧 알게 되시리라 생각하면서요.
결론적으로 제가 이혼을 털어놓고 나서 안 좋은 일을 겪은 것은 크게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들 위로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가끔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딱히 묻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이유를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하기도 했고, 물어도 약간 회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이건 그때그때 편할 대로 이야기했는데, 기본적으로는 그냥 털어놓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털어놓음으로써 그냥 제 마음 하나만 보면 꽤나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위로주 사겠다고 저녁 사면서 막상 저녁자리에서는 물어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고마웠습니다. 그냥 힘들겠구나 짐작만 하며 옆에 있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편하지 않은 자리에서 용기내어 화제를 꺼내고 위로를 해주시는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매우 조심하시며 평소처럼 대해 주시는 분도 있었고, 몇몇 상사분들의 따듯한 위로에는 혼자 눈물이 글썽해지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따듯한 위로의 말들은 아마 마음에 쭉 남을 것 같습니다.
"나도 내 딸에게 힘들면 돌아오라고 항상 말한다"
"직장과 사생활은 별개이니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
"너는 네 가정(아이)을 잘 지키고 있으니 가정을 잘 건사하는 것이니 조금도 위축되지 말아라"
미묘하지만 제게 어색해하는 사람과 신경 써주려는 사람이 교차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제가 민감한 성격이 있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판결이 난 지 꽤 몇 달이 되었으니 이제 직장에서 제 주변의 거의 절반 이상은 제 이혼 소식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혼을 숨기는 것은 고려를 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많이 걱정했었을 뿐입니다. 알리고 보니 대부분의 일이 항상 그렇듯이 괜찮았습니다.
저는 일상에 잘 복귀했습니다. 이혼소송 중에 마음속의 동요는 있었지만 그래도 일상은 쭉 별 변화 없이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챙기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사람들과 식사하고, 스트레스도 받고, 가끔 이렇게 글을 쓰고요. 지금은 대체적으로 행복합니다.
이혼 소송이 끝나다 보니 점점 이혼 소송보다는 '이혼 자체' 혹은 '이혼 후의 삶' 쪽으로 글의 내용이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매거진에서 쭉 이어 쓰거나, 아니면 다른 매거진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혼소송을 고민하시는 분들께서 댓글을 남겨주십니다. 그런 질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도 그 단계에 있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