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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니 Dec 14. 2020

5. 나의 결혼생활 돌아보기 - 이혼 이유서 작성

이혼에 대한 확신을 얻는 시간

안녕하세요. 레니입니다.




어제는 첫눈이 내렸습니다. 아를 데리고 잠시 집 앞에 나가 눈 구경을 했습니다. 눈 내린 아침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생각해  신기한 것 같습니다. 이혼 결정 이후에도 삶은 똑같이 이어지고, 평소에 느낄 수 있던 일상의 행복들도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요. 인간은 나약하면서도 동시에 불행에 매몰되기 힘든 존재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작은 행복들은 계속해서 충분히 주어지니 말입니다.



오늘은 '이혼 이유서 작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혼 변호사와 계약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소송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혼소송 제기 배경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의뢰인으로부터 면담 혹은 서면을 통해서 결혼 경위 및 결혼 생활, 파탄 사유 등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서면과 면담을 둘 다 했습니다. 작성한 서면이 바로 오늘의 주제 '이혼 이유서'입니다.



사실 이혼 이유서를 작성하는 데에는 별로 요령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형식도 없습니다. 그냥 본인의 이야기를 작성하되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넣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예컨대 배우자와 몇 년도에 무슨 계기로 만나게 되어서, 언제부터 연애를 시작하였고, 얼마나 연애를 한 후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결혼 준비 과정에서 특별한 사정은 없었는지, 양가의 반대가 심했다거나 어떤 다른 문제로 갈등이 심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씁니다. (결혼 전에 있었던 갈등이 결혼 후까지도 이어져 이혼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할 때 양쪽이 결혼에 필요한 금전적 비용을 얼마나, 어떻게 분담했는지도 씁니다. (적게 분담하거나 많게 분담했다고 해서 이후의 결혼생활에서의 잘잘못을 더하거나 덜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재산분할'을 할 때 각각의 '기여도' 산정을 위해서 필요한 사실관계 중 하나라서 쓰는 것입니다.) 제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 부부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씁니다.



언제 결혼을 했고, 신혼 생활은 어땠는지도 씁니다. 결혼 생활 동안 있었던 주요 갈등, 즉 '혼인 파탄 사유'를 상세히 씁니다. 우자가 외도를 했다면 외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쓰고, 문자나 카카오톡 대화 등 증거가 있다면 증거도 첨부합니다. 배우자의 가족과 갈등이 있었다면 갈등에 대해 역시 구체적으로 씁니다. 전 문제가 있었다면 씁니다. 폭행 문제가 있었다면 관련된 병원 기록 등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함께 기록합니다. 자녀가 있다면 언제 자녀를 낳았는지도 쓰고, 출산과 양육 관련하여 배우자와 있던 갈등이 이혼의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면 그것도 씁니다. 





이혼 이유서는 변호사에게 저의 이혼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것이지만, 쓰다 보 저의 마음을 정리해 주는 부수적인 기능이 더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혼인 파탄 사유를 작성하다 보면 결혼생활에서 있던 일들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이 과정은 상당히 괴롭습니다. 아이가 잠든 후 늦은 밤에 책상에 앉아 결혼생활을 하나하나 뒤져가며 왜 제가 이혼이라는 결정에 이르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시간 동안 가슴이 막혀오는 기분도 느꼈고, 참지 못하고 소리없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눈물 리며 이혼하는 이유를 써 내려가다 보면, '아, 내가 이런 것들로 인해 힘들었구나'라는 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자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강한 감정의 폭발과 결단에 의해 이혼까지 결심하게 되었지만, '과연 이 정도의 이유로 이혼을 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구심 한 조각은 이혼을 진행하려는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남들은 이 정도 일은 참고 살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소한 일로 이혼을 결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 '고작 런 걸로 이혼하니'라고 불안해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만큼 이혼은, 큰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인적으로도 큰 결단이며,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무게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혼 이유서를 통해 왜 내가 이혼을 결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언어로 작성해 보는 것은 것은 불안감을  확신을 줍니다. 왜 내가 이혼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자각할 수 있습니다. 이혼 소송은 길고 지난한 과정이고, 확신이 있어야 지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그러한 확신을 제공해 주는 행위가 됩니다.



파탄 사유를 써내려 갈 때에는 아무리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라도 쓰는 것이 좋습니다. 꼭 모든 내용이 이혼 소장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어차피 이혼 소장은 변호사가 작성하므로, 필요한 사실관계를 취사선택하고 또 추가하여 넣게 됩니다. 그보다는, 본인 스스로는 사소하고 참을 만한 이유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이혼 사유 중 하나로 삼았는데, 변호사가 보기에는 객관적으로 충분히 이혼 사유에 해당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우자가 수시로 폭언을 했는데, 당사자인 나는 그런 말들이 '폭언'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상처 받는 나 자신을 오히려 문젯거리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삼자가 보면 그런 말들을 지속적으로 듣는 것은 분명히 언어폭력이고 이혼 사유일 수 있습니다.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 이혼 사유가 되는 고통의 원인을 꽤나 장기간 겪다가 결심을 하게 되기에(한 1주일 힘들었다고 해서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고통에 숙해져 있는 상태가 되고, 그 고통이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자기 자신을 너무도 괴롭힙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장시간 괴로워하며 버티다가 이혼 소송까지 제기하게 된 경우, 그 원인은 객관적으로 풀어놓았을 때 이혼 사유로써 충분한 경우가 다수이리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저의 경우와는 달리, 글을 써내려 가면서 그래도 배우자가 고맙게 해 주었던 것이 더 많이 떠오르고, 내가 균형적으로 결혼 생활을 판단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비난만 했구나, 라는 반성에 이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혼의 위기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가정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너무 늦기 전에 배우자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 역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혼 소송을 시작하신다면, 변호사에게 제출할 이혼 이유서이긴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나의 결심을 설명하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변호사가 작성할 이혼 소장 초안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장 작성을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은 변호사가 알려줄 테니, 최대한 포괄적인 사실관계와 감정과 생각을 담은 글을 작성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결혼 생활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고통스럽지만 귀중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 주기에, 이혼은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키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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