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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뜨 Feb 02. 2023

정말 만지기 싫었던 국보 문화재

미술 작품은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백자 주자>, 15세기, h. 29cm, 국보 281호, 호림박물관

전시를 위해 작품을 만지다보면 새로운 힌트를 얻을 때가 종종 있다. 이 작품은 <백자주자>라는 이름의 국보 281호다. 워낙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조선 전기에 제작된 수 많은 주자(주전자) 중에서 유일하게 몸체가 병의 형태로 되어 있는 희소성 덕분에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다.


전시를 할 때 가장 긴장되고 어지간해서는 만지기 싫은 작품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였다. 보기에도 갸냘픈 주구(注口)와 손잡이 때문에 포장하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포장을 푸는 것도 가장 천천히, 도를 닦는 심정으로 해야했다. 국보라는 상징성도 긴장에 무게를 더해주었다.


이런 국보급 작품들을 전시할 때는 한창 전시 준비중이어서 아주 어수선한 전시실에서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해 주변을 모두 치우곤 한다. 그리고 조심스레 작품을 유물 상자에서 꺼내어 미리 계산된 동선대로 움직이며 진열대에 올려놓고 나면 나도 모르게 멈춰있던 숨이 터지듯 입 밖으로 배어나온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음직한 일일수록 괜히 더 생각해서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는 이상한 청개구리같은 생각. 나는 이 작품이 그랬다. 괜히 머리 속에서는 이 작품을 만지다가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뚝 부러지는 아찔한 상상이 들 때가 많았다. 그만큼 소중하고 두려운 작품이었다.


그런데 더 긴장하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은 손잡이로 드는 순간 부러져버리는게 99.9%의 확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단부가 상당히 무겁다는 사실이었다. 굽 아래에 손을 받춰도 위에 마땅히 잡을 곳이 없다는 점도 난감했다.


손잡이는 그저 장식일 뿐 실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의례를 위한 예기(禮器)로 봐야 한다. 직접 만져봐야 '아...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했겠구나'라고 절감하게 된다.


워낙 우리나라 백자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므로 이 작품을 전시에 포함시킬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쁜 전시실 다른 쪽으로 가서 조용히 실장님을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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