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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뜨 Jan 27. 2023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

미술 작품은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개념 중심으로 접근할 때가 많다. 시대별 특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다보면 마치 게임에서 스테이지1, 스테이지2처럼 인식되곤 한다. 그리스가 끝나면 로마, 그리고 중세, 르네상스 스테이지를 맞이하는 격이다. 그리스의 특징은 이러이러하고, 인상주의의 특징은 저러하다는 식으로 수학 개념 외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방식의 공부 역시 중요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이렇게 공부해야 된다고 본다. 학부생 때 작품 슬라이드 시험을 자주 봤는데 다 이유가 있다. 일단은 기초 개념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공부다.


시간은 어느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페이스로 흘러왔고 사람은 그 흐름에 계속 있었다. 그리고 미술은 세월의 흐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다. 미술사를 강의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시간성과 미술은 인간활동의 산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392년에 조선이 개국했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자. 오늘부터 조선이야. 그러니까 고려 청자는 버리고 새시대에 걸맞게 백자를 만들자!”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특정 사건이 미술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늘 해오던 방식대로 하되 서서히 변화를 주었다. 조선시대에 새로운 분청사기, 백자가 난데 없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이해의 기반이 갖춰진 후에 시대별 특징을 공부하면 훨씬 와닿고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하게 수학 공식 외우는 것처럼 여겨져서 재미도 없고 골치만 아플 뿐이다.


미술사의 학문적 목표도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다. 따라서 미술 작품의 특징을 분석할 때 항상 ‘사람이니까'를 염두에 두고 바라봐야 한다. 이렇게 해야 조선 초기에 유행한 분청사기의 여러 기법과 형태들이 왜 고려 청자를 닮았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었어도 고려 청자를 만들던 방식이 아직 생생한 상태에서 분청사기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고려 청자를 만드는 방식을 잘 알고 있는데 새나라 조선이 개국했다고 해서 굳이 버릴 필요는 없었을테니까.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백자라는 새로운 미술과 그에 걸맞는 기법이 나오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 A라는 화가와 B라는 화가가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면, 단편적으로 보아 둘이 교유관계를 맺었고 그래서 둘 사이의 영향관계가 있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일이라는 게 어디 그렇던가. 정말 친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사회 생활 차원에서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서 술 한 잔 했을 수 있다. 속으로 서로의 그림에 대해 무시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문헌 기록은 참고만 하되, 더욱 철저하게 작품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을 행하거나 아니면 A화가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 화가와 내가 거의 동화될 정도로 일기부터 모든 기록을 찾아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미술사 역시 다른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 연구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향상성을 지닌 유일한 존재라고 배웠다. 가끔 일상에 치이다 보면 이를 망각하고 업으로써 기계적으로 임할 때가 생긴다. 지금이 그런 것 같다. 나름 경계한다고 해왔건만 조금만 바쁘면 이를 잊게 된다. 잠깐 멈춰서 ‘나는 왜 미술사를 연구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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