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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뜨 Jan 26. 2023

사랑에 도달하는 과정

미술 작품은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글이나, 영화,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창작자의 창작물과 자신의 감성이 일치한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이를 두고 보통 “내 스타일이야”, “나와 감성적으로 통해”라고 표현을 한다. 그런데 이 좋아하는 감정을 해체시켜 보면 창작자와 나의 감성이 우연하게 맞아 떨어진 것보다는 창작물의 아름다움이 내 감성에 도달하는 과정이 납득이 되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영화 <노팅 힐>에서 우연히 줄리아 로버츠에게 쥬스를 쏟으며 시작되는 사랑이 보통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과 같은 감정이 우연하게 생긴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구나라고 여기며 건조하게 지내고 있다. 사랑의 감정을 수학적으로 볼 수 있다면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을 직시하게 될수록 마이너스 운동만 하다가 결국에는 0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새롭게 좋아하게 되고, 즐기고 있다. 끊임없이 그러하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비록 어릴 때처럼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급작스럽게 생기지는 않지만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기까지의 과정이 나름 논리적이고 합당하다 느껴지면 비로소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비록 느리더라도.


그나마 다행스럽달까. 이렇게 생긴 감정은 우연하게 길 모퉁이에서 줄리아 로버츠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단단하고 오래 지속된다. 차근차근 쌓아올린 기초 공사가 그만큼 탄탄하기 때문이다. 내가 표절 논란이 생겼고, 꽤 실망했음에도 20대의 거의 모든 추억과 함께 했던 가수의 음악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음악에 대한 사랑의 기반이 굳건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며 심장이 빨리 뛰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 현상을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미술 작품을 보며 '스탕달 증후군'같은 경험을 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스탕달 증후군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말 그대로 우주적인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고 미술 작품을 좋아하기까지의 마음에 차분히 다가서는 게 좋다.


미술 작품은 시간의 예술인 영화나 소설처럼 서사의 전개가 없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 마음을 둬야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작품을 보며 어떻게 좋아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럴수록 차분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높이는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의 매력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고, 그의 남다른 붓질에 매료될 수도 있다. 사랑의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가 다가가는 것이 좋아할 만한 것을 좋아하게 만들어주고 오랫동안 작품을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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